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이민 목회자의 탈진

2007-08-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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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연구 통계를 보면 매달 1,500명의 미국 목사들이 영적 탈진과 갈등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설문에 응답한 목회자 중 절반은 자신의 목회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교회를 떠나고 싶지만 마땅히 살아갈 만한 다른 방도가 없어서 그냥 교회에 남아 있다고 답했다.
이것이 비단 미국 교회만의 이야기일까? 요즈음 이민교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목회자의 탈진으로 인해 나타나는 건강하지 못한 결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목회자의 탈진은 ‘목회자의 이상적 기대감과 척박한 목회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반복되면서 자신감과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목회자의 탈진은 목회자 한 사람의 실패나 좌절로 끝나지 않고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 전체의 좌절과 갈등 또는 분쟁으로 번지는 데에 있다.
특히 우리는 이민 목회자의 탈진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인 이민교회가 가지는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과거 한국사회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동시에 근대화의 물결을 타면서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근면과 성실이 큰 미덕이었다. 시대적 조류와 함께 목회자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하고 사역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상황이 많이 안정된 한국은 언제부턴가 목회자의 건강을 위한 휴식이 강조되며 이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민교회의 형편은 다르다. 이미 안정된 한국에서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땅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절박감과 새로운 이민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단기간에 안정을 찾고자 하는 조급함 때문에 좀처럼 휴식하지 못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때로는 두 세곳의 일터를 오가며 바삐 살고 있다. 그러니 이민교회를 목회하는 목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교인들의 형편을 보며 필요한 휴식조차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휴식과 여유를 강조하는 미 주류사회의 문화와 한인사회의 ‘빨리 빨리’의 문화 사이에서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목회를 하게 되는 것이 일반화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있는 교회도 속히 양적 질적으로 부흥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조급함이 스스로를 더 얽어매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목회자가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하면서 작은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이 사역하던 교회는 뜻하지 못했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의 탈진은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엘리야나 모세도 탈진을 경험한 기록이 나온다. 그들은 동일하게 “더 이상 못하겠으니 그저 죽여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간청할 정도로 극심하게 탈진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오늘 내 목회가 성공적이라고 자만하거나 열심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교회와 교인들은 더 이상 건강조차 돌보지 못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채 목회하고 있는 목사를 헌신적이라고 존경만 하지 말고 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제도적으로 그러한 휴식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제 우리 이민 교회도 목회자의 탈진의 위험을 인지하고 목회자들에게 적당한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건강한 목회자들과 함께 건강한 이민 교회를 세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박혜성 (목사·아주사퍼시픽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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