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08-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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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샛바람은 솔숲에 깔린 새벽안개를 밀고 나와 풍경소리가 된다. 풍경에 매달려 뜬눈으로 밤을 밝힌 물고기의 몸 뒤척이는 소리에, 노란 다람쥐 들깬 잠 비비며 합장하는데, 풀잎 끝에 맺힌 영롱한 이슬 한 방울, 기어이 몸 떨어뜨린다.
힘차게 기지개 켜는 우주.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웬 일로 먼 길을 왔는고?’ ‘큰 뜻을 얻고자 합니다.’ ‘내려놓으시게’ ‘한 물건도 지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 하면 짊어지고 가시게 나’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웬 일로 먼 길을 왔는고?’ ‘풀어서 벗어나고자(해탈) 합니다.’ ‘묶은 놈은 누구인고?’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손에 쥐어도 쥔 줄을 모릅니다. ‘웬 일로 먼 길을 왔는고?’ ‘참 나를 찾고자 합니다.’ ‘내(아집)가 있는 곳엔 그런 것 없으이.’
또 다시 ‘참 나’를 찾아 돌아서는 학승의 모습에 선사는 막막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만나도 만나지 못합니다.
‘웬 일로 먼 길을 왔는고?’ ‘번뇌 망상의 불을 끄고자 합니다.’ ‘그 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시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네도 모르는 것을 난들 어찌 하겠는가.’
우리는 공부를 지어가면서 깨달음의 문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꼭꼭 닫히고, 도는 찾으면 찾을수록 더 깊이 숨는다는 도리를 알지 못합니다.
‘웬 일로 먼 길을 왔는고?’ ‘마음 길을 찾고자 합니다.’ ‘ 허허. 마음 길이라. 이 보시게. 저기 앞뜰에 있는 바위덩이가 자네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그야, 물론 제 마음 안에 있습니다.’
아서라!, 길을 앞선 숱한 선사들이 ‘있다 없다, 안이다 밖이다.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목숨을 잃으리라.’ 그다지도 일렀거늘.
‘쯧쯧, 그 마음 무거워서 어떻게 걸어다닐꼬?’
아뿔싸! 그만 그물에 걸려들고 말았구나. 앞뜰의 바위는 그냥 그대로, 다만 ‘있을 뿐’인 것을….
불교의 선종에는 심인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심인이란 언어를 떠난 마음의 깨달음, 그것의 이심전심을 인감도장에 비유한 것입니다.
인도로부터 붓다의 심인을 전하고자,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 대사는 공부가 깊다고 소문난 양나라의 무 황제(502-549)를 만납니다.
‘무엇이 불교의 본질이 되는 가장 성스러운 진리인가’ ‘텅 비어서 성스럽다 할 것이 없습니다.’
‘짐이 그 동안 수많은 불사를 했소이다.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이까.’ ‘아무런 공덕도 없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판 진검 승부를 잔뜩 기대했으나, 칼을 뽑기도 전에 비틀대는 싱거운 무제를 뒤로 하고, 그 허허로운 마음을 양자강의 무딘 바람에 실어 보낸 달마. 뒤늦게 참사람을 눈치 챈 무제의 장탄식은 이러합니다.
‘보아도 보지 못했고 만나도 만나지 못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한스럽고 한스럽다.’
선가의 스승들이 말로써 말할 수 없는 도리를 나타내고자 할 때나, 수행자들의 분별심을 끊도록 할 때, 또는 수행의 깊이를 가늠하고 호되게 꾸짖을 때, 자주 사용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할!!!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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