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가지 치기

2007-08-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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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나무 가지들
그대로 있고
삶의 가지도 말버릇 뿐
어느 것 하나 쳐내지 못하고
빽빽한 가지가 몸에 무겁다.
너무나 무겁다.

하늘을 가리며
점점 더 처지는
여러가지 가지들
이러다간 말뿐인 가지 치기
시작도 하기 전에, 하나 하나
찢어지고 말겠네.
몸통까지 다 쓰러지고 말겠네.

이 시를 쓴 10여년 전에도 나는 꽤나 분주하게 정신 없이 살았나 보다. 삶의 가지치기를 문득 문득 깨달으면서도 조금도 나아진 것 없이 무성한 가지와 잎새에 치인 채, 오늘도 분주한 하루를 연다. 그래도 오늘은 몇개의 가지라도 쳐볼 수 있을까?
나무가 자라며 가지가 생기고 잎새와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나무가 적당히 자라, 때가 되면 제대로 잘 자라도록 가지 치기를 해 주고 잎새도 쳐준다. 그래야 나무의 모양새도 좋아지고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과 우리의 삶은 참 비슷한 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때에 따라 가지 치기가 필요한 것이다.
갈 수록 바빠지는 삶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메일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는 그렇게 좋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상세한 소식을 사진까지 곁들여 받게 되고, 우체국에 가지 않아도 곧 답신을 할 수 있고, 편리하고 신속하기가 이를 데 없어 얼마나 찬사를 했는가? 사무적인 모든 일들도 팩스로 주고 받는 것 보다 훨씬 유효해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주고 받는 이메일의 주소가 늘어나고, 일일히 답하느라 시간을 쏟게 되고, 게다가 원치 않는 스팸메일의 공격 등으로, 이메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면서도 골치를 아프게 하는 존재가 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이 어디 이메일 뿐이랴? 먹는 게 그렇고, 입는 게 그렇고, 살림살이가 그렇고, 읽고 생각하는 게 다 그렇다. 어쩌면 바쁜 삶을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맡은 일에 충실하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증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그 속에서 여유를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겠다. 바로 가지 치기를 통해 여유를 가지며 앞과 옆 뒤는 물론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쓸데 없는 모임에 참석하고 엉뚱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는지? 욕심이 도를 지나 허황된 일에 머리를 쓰며 이리저리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간섭 안 해도 좋을 일들을 간섭하며 상처주고 상처 받으며 아웅다웅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별 이득도 없는 흥미거리 시시한 기사를 읽느라 시간을 쏟고, 멍청하니 TV에만 눈을 두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느라 밀리는 일들 때문에 짜증나고 우울해 지는 건 아닌지?
투자 상담을 하다보면 정말로 자신에게 철저한 분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계획을 세우고 어떤 유혹이 와도 끄떡도 않고 계획대로 가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말 닮아가고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겁날 정도로 가지 치기를 잘 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전문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한가지 한가지씩 뜻한 대로 실행해 나가고 있으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에 경이로움을 표하게 된다.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으며 더 튼실한 가지를 만드는 계기가 되게 하고, 때를 따라 가지 치기를 하며 나무도 잘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약함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가지들을 잘라냄으로서 오는 자유함을 생각해 본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고 싶다.
(323)541-5603
로라 김
<원 프라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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