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기본에 충실한 나눔

2007-07-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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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재해 지역 구호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의 한 교회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성도들에게 모금을 해 실어온 구호물품이 현지에서 분배를 맡아 줄 협력단체를 찾지 못해 한국으로 되돌아올뻔 했습니다. 돌아갈 비행 일정이 다가오자 시장 입구에서 구호 물품을 풀어 무작위로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은 아수라장이 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4년. 르완다 내전 이후 약 200만명의 난민들이 모여 있던 르완다, 콩고 국경 지역에 한국의 한 단체가 난민 구호 활동을 목적으로 무작정 봉사활동 팀을 구성해 도착했습니다. 이 단체는 유엔으로부터 구호 활동 지역을 지정 받지 못하자 난민촌에서 약 50마일 이상 떨어진 콩고의 한 시골 마을에 캠프를 차려 놓고, 그 지역 주민들에게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는 ‘르완다 난민촌 현장에 꽃 핀 한국인의 얼’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아프가니스탄에 1년간 기아봉사단으로 파견된 꽃다운 청춘의 청년이 A형 간염에 걸려 세상을 떴습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이 청년이 백신만 제대로 맞았더라도 죽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과 신문에 게재되는 시점이 며칠의 차이가 있으니 아마도 이 글이 게재될 때는 다른 국면이 전개되고 있겠지요.
월드비전에서 일한 17년 동안 수없이 구호, 개발 사업의 현장을 경험한 저로서는 실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국제 기구들이 마련하고 있는 기본적인 매뉴얼만 지켰었더라도, 그들의 현지 파견을 주관한 단체가 좀 더 전문적이고 책임 있는 기준을 적용했더라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계의 해외 선교, 또는 한국민의 지구촌 소외된 이웃에 대한 구호 열기는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많은 젊은이가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뜨거운 마음을 잘 인도해야 할 교회, 단체, 또는 기관들이 자신들의 사업 확장이나, 모금원 확보를 위해, 또는 언론에 노출시키기 위해 너무나 무모한 접근을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해외 구호 사업, 또는 선교를 진행하는 한국의 단체, 기관,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현지에 주민 네트웍이 없이 대부분 한국인 직원을 파견하거나, 현지 선교사를 지정하여 해외 지부라 칭한다 ▲현지의 문화, 언어, 주민 특성, 기후, 토양, 질병 등에 대한 정보 및 경각심이 부족하다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현지 사업 계획이 없다 ▲‘한국인 최초’등 언론을 의식한 기사 포장에 능하다 ▲경험 있는 단체들과 협력 사업보다는 꼭 ‘자신’이 사업을 수행하려 한다 ▲이벤트성 현장 방문이 많습니다.
이 외에도 국제 기구에 속한 직원의 눈으로 볼 때 준비할 내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모든 문제는 단체의 전문성, 신중성, 책임성에서 비롯됩니다.
이 칼럼을 쓰는 지금, 억류되어 있는 분들의 안전한 귀환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합니다만, 그들은 정말 귀합니다. 가슴에 열정을 담고, 나름대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자비량으로 구호활동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런 분들이 많이 나타나겠지요.
그 분들의 마음을 현장에 잘 전달하고, 그 분들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은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 기관, 교회에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보다 전문적이며, 체계적이며, 기본에 충실한 접근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저도 그러한 기구 중의 하나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욱 저 스스로의 각오를 다집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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