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07-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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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깨어라!

우리는 살면서 실체가 없는 환상을 비유하고자 할 때, 곧 잘 ‘화륜’이라는 말을 입에 올립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 전날 밤이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들쥐들을 잡기 위해 논두렁에 불을 놓는 쥐불놀이를 했습니다. 화륜이란, 그 때 불을 담은 깡통을 돌리면서 생기는 둥근 불꽃의 원을 말합니다.
빈 깡통에 바람구멍을 여러 개 뚫고 철사로 길게 끈을 매단 후, 저마다 그 깡통 속 나무 조각이나 솔방울에 불을 붙여 돌리기 시작하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보름달 같은 수많은 둥근 불꽃들이 일대 장관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을 불 바퀴 즉, 화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화륜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긴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며 환상일 뿐입니다.
그러한 실체 없는 환상을 비유하는, 보다 구체적인 또 다른 좋은 예가 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점, 선 등의 기초적 개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점은 위치만 있을 뿐, 길이와 넓이는 없다. 선은 점이 움직인 궤적으로서, 길이만 있고 넓이와 부피는 없다. 면은 선의 움직임으로서, 넓이만 있고 부피는 없다. 입체는 면의 움직임으로서, 부피를 갖는다.’
점이 길이와 넓이가 없다고 하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실체가 없는데 위치가 있다고 하는 것도, 또한 실체 없는 점으로 선과 면, 입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 됩니다. 그래서 자명함에 의거한 공통개념이라고 하는 공리란, ‘협약’이요, 한편으론 ‘강제된 것’이며, ‘위장된 정의’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이요, 면이요, 입체라고 알고 있는 것은 협약에 의한 가정된 위치만 있을 뿐, 그 체성이 없는 점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다만 착각의 연속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입체란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도 역시 지속적인 착각의 흐름 속에 있는 환상일 뿐, 그 실체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우리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눈두덩을 지그시 누를 경우, 우리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처럼,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허공 속의 꽃’ 즉, ‘공화’라고 부릅니다.
단순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영원불변한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환상하는 것을 또는 그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공화’라는 말로 비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점의 ‘위장된 정의’나 쥐불놀이의 ‘화륜’, 혹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화’라는 꿈속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환상이요 꿈이라고 해서, 사람살이의 무가치나 허망함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꿈에서 깨어나, 모두가 인과 연으로 잠시 모였다 흩어질 뿐인 세상의 참모습을 바르게 직시하여, 혹여, 세계를 잘못 해석함으로써 발생하는 터무니없는 집착을 벗어나, 오히려 남과 더불어 참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진정 어린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그러한즉, 사람이여, 사람아! 깨어날 지라!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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