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7-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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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만남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삶을 통해 수많은 ‘만남’이 생겨난다.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자라면서 친구와 만남이 형성된다.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선생과 제자간의 만남이 생겨난다. 직장에 들어가면 동료들과 만남이, 새로 이사해 들어가면 이웃과 만남이 생긴다. 더 나아가 적령기가 되어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로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만남은 분명 축복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가 어떤 인연으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알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운명은 많은 경우,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됨을 보기 때문이다. 남편 하나 잘못 만나 평생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인 한번 잘 만나 바보 온달이 일국의 대장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좋은 만남은 분명 하느님의 축복이요 은총이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베드로는 가장 큰 행운아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면, 그는 분명 갈릴리 호수에서 대를 이어 고기 잡고 사는 평범한 어부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그러나 만남 또한 반드시 해피엔딩이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좋은 만남이라도 ‘소중히’ 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일례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도 베드로와 요한은 제자가 될 수 있었으나, 어느 부자 청년은 그만 고민 끝에 예수님을 떠난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수님을 만나 그 분의 축복을 받은 제자까지 되고도,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단돈 30냥에 눈이 뒤집힌 탓에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만남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친구간 우정이 한 순간에 원수가 되고, 이웃이 된 때문에 법정싸움까지 가게 된다. 죽자살자 좋아서 만난 부부조차 미워한 나머지 남남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아지는 세상이다.
언젠가 만년에 사업에 성공한 카네기에게 어느 신문기자가 성공의 비결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의 성공은 오늘 이 순간 만나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대해 왔고,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결과입니다.”
만일 우리가 결혼으로 만난 배우자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산다면, 분명 우리는 몇 배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친구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훨씬 깊고 아름다운 우정을 만들 수 있다. 자식과 만남도 그렇고, 이웃과 만남도 소중히 여길수록 기쁨이 커간다. 더 나아가 나에게 맡겨진 지금 이 순간의 일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훨씬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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