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07-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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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카

망태기는 아직도 비어 있다.
집을 떠난 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다. 그동안 몇 개의 산과 들을 훑고 지나왔는지 모른다. 약이 되지 못할 독초를 온전히 캐오라는, 스승님의 분부를 받고 길을 나선 터였다. 몇 개의 산판을 이 잡듯이 뒤지고 왔지만, 내 눈에는 세상에 있는 풀이란 풀은 모조리 약초뿐인 것 같았다.
잎사귀가 독이 되나 싶어 캐보면 뿌리가 약이 되고, 열매가 독인가 싶으면 잎이 약이었다. 이런 어쩌나, 애초에, 스승님께 덜떨어진 청을 올린 것이 사단이었다.
당대, 인도 최고의 명의이신 스승 핑갈라를 찾아, 히말라야의 앞자락으로 몸을 옮긴지도 어언 칠년이 된다. 그동안 스승님의 무릎 아래서 신명을 다해 의술을 연마해 왔다. 이제 제법 사람의 병이 눈에 보인다 싶어, 보다 높은 의술을 배우고 싶노라고 덜컥, 당돌하고 시건방진 청을 내고야 만 것이다.
빈 망태기만 들고서, 마땅히 둘 곳 없는 두 눈으로 땅 파기에만 열심인데, 스승님은 뜻밖의 말씀을 잔잔한 미소에 담아내시는 것이었다.
“이제야 네가 참된 의사가 되었구나. 이제는 나한테서 더 배울 것이 없느니라.”
약도 잘 못 쓰면 독이 되고 독도 잘만 쓰면 약이 된다는. 또한 풀잎 끝에 맺힌 이슬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듯이, 같은 약도 사람에 따라 독도 되고 약도 된다는 것을, 깊이깊이 명심하라는 말없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고향인 마가다 국으로 돌아온 지바카는 종횡무진 의술을 펴, 그 이름을 떨칩니다. 왕의 등창을 치료하고 당시에는 파격적인 개복 수술은 물론, 두개골 절개 수술이라는 엄청난 고난도 의술을 발휘함으로써, 명실공히 명의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스승의 뒤를 이어, 인도 최고의 명의로서 자리매김될 즈음, 지바카는 평소 그토록 뵙기를 원했던, 샤카무니 붓다님을 드디어 친견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붓다께서는 이런 말씀을 지바카에게 주십니다.
“지바카여! 의사는 모름지기 환자들의 몸의 병을 살피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마음의 병부터 살펴야 하느니라. 무릇, 인간들의 병이란 대부분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지바카는 가슴이 떨렸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했던, 인간들의 마음의 병. 이 분은 진정 의왕 중의 의왕이시다.”
지바카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붓다께 귀의하고 주치의가 되어, 그 분의 풍병을 치료하게 됩니다. 또한 수많은 수행자들의 병을 치료함으로써, 그 분으로부터 의왕이라는 칭송을 받게 됩니다.
Meditation(명상)과 Medicine(약). 두 단어는 그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육체의 병은 약으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망념의 세 가지 독이 되는 마음의 병은, 명상이란 약으로 치유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응병여약이라 해서, 몸의 병에 따라 약의 처방을 달리하듯, 붓다께서는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하셨습니다.
샤카무니 붓다께서는 참으로, 의왕 중의 위대한 의왕이십니다.

박 재 욱 (LA관음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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