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IT산업 ‘명당’을 찾아라

2007-07-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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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만한 곳 아직 드물어

스타들이 쑥쑥 나타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디 출신이라든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가가 관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재능보다 다른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것은 바로 장소이다. 다시 말해 ‘스타의 고향’이다. 아니 스타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다. 이 장소가 재능보다 더 중요한 변수라는 지적이 스탠포드대학 G 재커리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히트작’ 내놓아도 타지역선 주목끌기 조차 어려워
세계 두뇌 몰려드는 밸리 입주회사들 아직 ‘난공불락’
2000년 미 벤처투자 중 20%… 2006년엔 27%로 늘어


재커리 교수는 7년 전 싱가포르에서 심웡후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싱카포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심웡후는 곧 싱가포르가 IT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란 데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계발한 뮤직플레이어를 재커리 교수에게 내보이며 “조만간 시장을 휩쓸 것”이라고 자신했다. 소니의 그 유명한 ‘워크맨’을 제칠 것이라고 했다.
심웡후의 뮤직플레이어는 MP3의 기능을 모두 갖췄다. 대단했다. 그러나 현재 이 시장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애플’의 iPod이 장악했다. 애플은 지난달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란 단어를 삭제했다. 그저 ‘애플’로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다. 싱가포르가 실리콘밸리에 한방 먹은 셈이다.
심웡후를 만난 지 몇 달 후 재커리 교수는 에스토니아, 아이슬랜드, 핀랜드의 첨단산업 도시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최첨단 기술자들과 만나 환담했다. 셀폰, 인터넷 기술에 대해 들었다. 그들은 조만간 자신들의 제품이 세계 시장을 누빌 것이라고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술과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실제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에스토니아, 아이슬랜드, 핀랜드 주민이 고작이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이들에게 셀폰이나 이동식 기기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
결국 인터넷 검색사이트인 ‘구글’이 전체 파이를 독차지 하다시피 하는 세상이 됐다. 구글은 지난 1월31일 분기순익 발표자리에서 ‘10억달러 흑자’를 당당히 내보였다. 구글도 애플과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고 있다.
구글의 경이적인 성장과 애플의 재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장소이다. 아이디어를 활발하게 교환할 수 있는 곳에서 무언가 기발하고 획기적인 것이 탄생한다는 주장이다. 이에는 실리콘밸리 만한 곳이 없다고 스탠포드대학 경제학 교수 폴 로머는 주장했다. 그는 “장소는 아주 중요하다”면서 “IT관련 아이디어 개발과 성공확률은 실리콘밸리와 다른 지역 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샌호제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자리한 실리콘밸리의 주가가 상종가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위한 투자가 이곳으로 몰린다는 점과 연계된다. 투자자들은 이곳에서 무언가 한방 터질 것을 기대하고 돈을 투자한다.
2000년 미국전체 벤처투자액의 20%가 실리콘밸리에 쏠렸는데 2005년엔 27%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의 영광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앞으로는 인도나 중국이 새로운 IT 메카로서 도전장을 낼 것이라고 경고성 전망을 내놓았다. 지금도 이러한 전망을 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을 머쓱하게 한 현실은 실리콘밸리의 ‘꺼지지 않는 불’이다. 선두주자로서의 실리콘밸리는 IT 선두주자로서의 이점을 갖고 있다. 또 고수익 창출, 투자나 고급두뇌의 쇄도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유명세를 따른다. 엔지니어나 기업가도 예외는 아니다. 소위 ‘물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전 세계 실력파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려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IT관련 아이디어를 보다 신속하게 현실과 연결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는 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된다”고 UC버클리 정보학과 애나리 캣시니언 교수가 동조했다.
물론 실리콘밸리가 난공불락의 요새는 아니다. 90년대 닷컴 붕괴의 후유증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80년대 일본이 메모리 칩 시장을 석권하던 시대를 떠올려보자. 실리콘밸리도 얼마든지 다시 내리막길을 걷다 언젠가 쇠락할 수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어려움을 겪고 나면, 비온 뒤 땅 굳어지듯이 강한 내성을 키워간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소이다.

<뉴욕타임스 특약-박봉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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