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6-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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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성서에 ‘밀과 가라지’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어느 주인이 밭에 밀을 심었는데 얼마 후에 보니 밀 사이로 가라지가 보였다. 그러자 종이 주인에게 ‘저 가라지들을 다 죄다 뽑아 버릴까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놔두어라! 가라지를 뽑다 혹시 밀이 상할까 두렵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것이 바로 주인과 종의 차이다. 종의 눈으로는 가라지만 보지만, 주인은 가라지 너머로 밀을 보는 차이다. 종의 눈에는 쓸모 없는 것이 먼저 들어오지만 주인의 눈에는 소중한 것이 먼저 들어온다는 의미다. 오직 주인이 되어야만 온 가솔을 먹여 살릴 젖줄의 소중함이 가슴 절절히 적셔온다는 소리다. 농사가 잘 되면 좋고, 안 돼도 받기로 한 품삯을 받을 것이니 설사 가라지 뽑다 밀이 약간 뽑히기로서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하는 것이 종이 갖는 마음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때마다 조금 전에 들은 예수님의 ‘종과 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인’이 되면 절로 마음 안에 모든 것이 안겨와서,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게 자리잡기 때문이다. 소중하게 느껴지면, 자연 정성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찍이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의 근간으로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여러분이 진정 대한의 독립을 원한다면, 국민 하나 하나가 대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주인의식을 가져야만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정성이 생긴다는 말씀이었다.
말씀뿐만 아니라 한때 남가주 지역 리버사이드 농장에서 일할 적에도 “오렌지 하나라도 주인된 마음으로 따십시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요, 독립하는 길입니다” 하시며 동료 일꾼들을 계몽시켰다. 그런 나머지 한인 노동자들이 딴 오렌지는 상한 것 하나 없고, 부러진 가지 하나 보이지 않아 농장 주인이 다른 어떤 노동자보다 특별히 한인들을 우대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 점이 바로 도산 선생의 남다른 위대함이었다.
농부의 눈에는 논밭의 곡식들이 온통 생각과 관심의 전부여서 비바람이 치면 한밤중에도 절로 눈이 뜨여 밖으로 잽싸게 뛰쳐나가게 된다. 그러나 뒤뜰의 토마토가 열리면 좋고, 안 열려도 그만이라는 ‘여가’로 가꾸는 도회지 사람에게는 비바람이 아니라 천둥 번개가 친들 어찌 곤한 눈이 뜨여질 것인가. 설사 눈이 뜨여진들 무슨 수로 한밤중에 일어나 밖으로 나갈 힘이 나겠는가.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신앙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자식은 종들과 달라 아버지의 일을 자기 것처럼 챙긴다. 아버지 것이 자기 것이라는 ‘주인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천국의 상속자인 아들, 딸로 삼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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