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6-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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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오른손과 왼손

제가 재림교회 교인으로서 교회의 지시에 따라 북한 어린이 돕기를 시작한지 벌써 3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매달 중국의 우리 직원이 지원품을 가지고 북한으로 들어가서 4곳의 고아원에 배달하고 또 함께 지내다가 돌아옵니다. 지난 5월말에 제가 북한에 가서 이번 여름부터 다른 지역의 고아원 한 곳을 더 돕도록 합의를 보고 왔습니다.
북한의 주민과 지도자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움 받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어려워서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받는 태도가 매우 어색합니다. 마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자꾸 주겠다고 하니까 마지못해서 도움을 받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처음에 제가 그들과 접촉해서 합의하고 지원을 시작할 때, 북한 관계자들의 이러한 태도가 저에게 매우 부담이 되었습니다. 교우들이 어렵게 보내주는 성금으로 그다지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은 분들을 부질없이 도우려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고, 또 그러한 북한 관계자들과 의논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보고 온 북한의 고아들을 생각하면 돕는 일을 중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도움이 필요한 우리 동족, 내 핏줄들, 그것도 어린것들이 거기 1,800명이나 있었습니다. 그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 동안에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 하나를 되새겨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다른 이를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타인의 도움을 받을 때 느끼는 굴욕감, 자괴감, 낭패감 같은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수족도 서로 눈치 채지 못하게 도움을 나누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북한의 어린이들을 지원하도록 심부름하는 일 중에서 그 어린이들을 사진 찍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자신의 남루한 모습을 사직 찍히는 것을 가슴 아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를 따라다니는 지도원은 가능하다면 사진을 못 찍도록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만일 사진을 안 찍으면 지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가서 어떻게 도움을 호소할 수 있겠냐고 그분들을 설득하느라고 진땀을 빼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였습니다. 이 사진들은 여러분을 지원해 주시는 교우들에게 보여드리는 일 외에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을 찍는 일은 매우 잔인한 짓입니다. 하지만 계속 돕기 위해서는 그들의 현실과 처지를 돕는 분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사진을 찍어 오지만 공개하는 일은 매우 조심해 합니다. 이것이 돕는 사람의 예의였고, 또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신다면 제발 조용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밀가루 몇 톤 지원하고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내는 일은 지원을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우리 동족들은 우리 자신들처럼 자존심이 강합니다. 생활이 어려운데 내 이웃에게 내색하기 싫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미주 교민들도 있었지 않습니까? 북한의 동족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냉이 하나로 목숨을 이어나가도 구걸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 그러한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야 하겠습니다.
가끔 북한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는 분을 만납니다. 그렇다면 내 동족을 외면하면서 우리가 누구를 도와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오른손은 왼손이 모르게 형제를 돕습니다. 그게 돕는 것이 아닐까요?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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