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남의 기를 살려주는 추임새

2007-06-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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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서 창의 사이사이 고수가 한 번씩 던지는 ‘좋다’ ‘얼씨구’ ‘흥’ ‘그렇지’ 등의 짧은 소리들을 추임새라고 한다. 가끔씩 노래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한 번씩 던지는 추임새는 비록 짧은 소리이지만 흥을 돋우고 때로는 심오한 내용을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한다. 그저 북만 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어 짤막하게 던지는 고수들의 추임새는 노래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가락과 장단 그리고 노랫말에 맞춰 때에 따라 던져지는 추임새는 노래를 살리며 이어가는 아주 중요한 이음새이다.
지난 주 며칠 간 감리교여성국 주관 한인 여선교회 전국 훈련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글로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여성으로서의 자세와 방향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 중에 ‘리스닝’(Listening)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비록 우리가 다 아는 중요성이었지만 실제의 삶에서 대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 하고 진실을 얘기하지 않으며 듣기 보다는 나의 말만 주로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을 수만 있다면, 상대방을 알게 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다툼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가족 간, 친구 간, 단체 간의 다툼들은 바로 말하기와 듣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속에 있는 얘기들을 정리해서 상대방에게 전하는 말하기도 중요하지만 잘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을까? 가능한 적게 말하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고 잘 대응해 주는 간단한 진리를 두 사람씩 짝 지어 연습을 해 보는 실험시간을 통해 그냥 들어 줄 때와 관심을 갖고 들어줄 때가 다름도 알게 되었다.
몇 마디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나의 생각이 자리 잡으며 상대방의 얘기가 건성으로 들려 제대로 들어오지 못 하는 것도 깨달았다. 세상일을 혼자 떠안은 듯 바쁘고 분주한 머릿속에 다른 이의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다른 강사 한 분은 ‘잘 듣는 것’이란 추임새를 잘 하는 것이라고 재치 있게 이야기했다. ‘추임새, 아하, 바로 그 것이었구나’. 나의 감탄사는 비록 길기는 했지만 그분의 말에 대한 추임새이며 응답이었다. 추임새를 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잘 들어준다는 표시가 아닐까? ‘그랬군요’ ‘정말 멋지네요’‘얼마나 좋았어요?’‘많이 힘 드셨겠군요’ ‘그래도 참 용하시네요’ 등의 짤막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표현이며 더 많은 것을 얘기하게 하는 이음새이며 촉진제 역할까지도 한다.
우리같이 늘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더욱 잘 듣는 것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원하는 것은 물론 같이 일하는 에이전트 간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에스크로 회사, 타이틀 회사, 융자회사등과의 이슈 등을 잘 들어주면 웬만한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잘 해결될 수도 있다. 손님들의 생각을 듣기 시작하는 순간 내 생각은 그동안의 경험과 판단으로 멋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손님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들이 내 생각에 묻혀버리고 그래서 결국엔 오해가 생기고 원치 않는 분쟁으로 갈 수도 있게 된다.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면 슬픔과 괴로움은 덜어지고 기쁨은 배가 되리라.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며 던지는 진지하고 재치 있는 추임새 등은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밝고 명랑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본다. 새 한 마리 날개 짓을 하며 하늘로 오르고 한줄기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린다. 새 날개 짓 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가슴속을 흐른다.
조용한 가운데 바람소리를 듣는다. 하나님의 음성도 가까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라는 추임새를 미리 해본다.
(323)541-5603
로라 김
<원 프라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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