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조금씩 놓아주기

2007-06-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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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의 우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난 기숙사를 나왔다. 세상에 제일 매정한 엄마가 나 말고 또 있을까 라고 스스로 반문하며 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승욱이 잘 갔어? 에구 그 어린 것을. 엄마 많이 찾을 텐데.” “괜찮아 잘 갔어. 나보다 씩씩하던걸. 뭐.” “저번에 엄마가 부탁한 집에 조금 있다 가 줄 수 있지?” “응, 집에 가서 옷 갈아 입고 바로 갈께”
엄마가 간병하러 가시는 집에서 다른 환자 분을 소개해 주셨는데 며칠간 간병 일을 봐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내가 가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 대충 얼룩진 얼굴을 닦고 난 환자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귀에는 승욱이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너무 허전해서 자꾸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간병 일을 내일부터 간다고 할 걸. 이렇게 우울한 얼굴로 가는 것도 실례가 될텐데.’
난 현관 앞에 서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그냥 돌아갈까? 오늘은 영 기분이. 자식 떨어뜨려 놓고 온 엄마가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에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인사만 드리고 가야지.’
난 현관벨을 눌렀다. 한눈에 봐도 환자인 것을 알 수 있는 A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일을 도와 드리러 왔는데요” A아주머니와 난 소파에 마주 앉았다. 말하는 것 자체도 힘이 들어 보인다. 바람만 불러도 훅 날아갈 것 같이 많이 수척해 있다.
난 조용히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음 한 켠에서는 ‘우리 승욱이 잘 있나? 너무 울어서 지금쯤 전화 올지도 모르겠다. 음식도 전혀 입에 맞지 않을 텐데.’ 수심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사실은 오늘 아이를 기숙사에 보내고 오는 길이거든요. 걱정이 돼서요. 아이가 장애가 있거든요. 시청각 장애여서 말을 못해요.” “젊은 엄마가 그래도 용하네요. 이렇게 정신없는 날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요. 난 그것도 모르고 계속 사람을 붙잡고 있었네.”
“사실 오늘은 잠깐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요 아주머니를 뵈니까 마음이 바뀌었어요.”
“아직 젊은 엄마라 아이 키우는 것에 많이 우왕좌왕하죠? 저도 그랬는데요. 어차피 미국에서 아이들은 대학을 가든 성년이 되면 한국과 달라서 부모 곁을 다들 떠나요. 자식을 품에 꼭 안고 있던 엄마들이 중년을 바라보며 떠나간 자녀 때문에 빈둥지 증후군이라든지 우울증을 심하게 앓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렇다고 자녀들이 엄마 마음을 알아 줄 거라고는 생각지 마세요. 애기 엄마도 부모님 마음을 다 이해해 드리지 못하잖아요.”
“네. 전 우리 부모님이 언제나 제 곁에 계실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얼마 전에 친정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겠네요. 그런데 애기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지금부터라도 자녀를 잡고 있는 손의 손가락을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을 하세요. 나중에 한번에 주먹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쫙 피듯 자녀를 놓아주면 너무 힘들어져요. 내 말이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을 거예요. 아직 애들이 어린데다가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하필이면 승욱이를 기숙사에 보내고 온 날 이 분을 만나게 되었을까. 조금씩 놓아주기. 난 한손으로 승욱이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두 손 다 승욱이를 꽉 잡고 있었다. 난 내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연습을 하고 마음으로 승욱이에 대해 조금씩 놓아주기를 시작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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