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2007-05-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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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눈먼 교회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교회를 기웃거리는 풍토는 언제부터인가 일상화됐다. 유명 정치인이 방문하는 날 드려지는 예배는 산만해지기 쉽다. 교회는 신앙의 특성을 유지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교회에 보여준 구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 교회는 또 한 번 더러운 정치 흙탕물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거 장로 대통령을 통해서 교회에 긍정적인 유익을 준 것이 전혀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부조리한 현 주소다.
작금의 한국 정치인들로부터 백성들을 향한 사랑 어린 헌신과 행동을 볼 수 있었던가? 교회 지도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알지 못하고 어느 특정한 인물을 지지하는 조직과 후원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미주 한인교회까지 여기에 가세해 한국 정치에 영향을 주려 하는 분위기는 크리스천의 빗나간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의 후원회 운영에 소비되는 재정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결국은 성도들의 지갑에 변칙적인 형태의 헌금을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새처럼 선거 때마다 교회에서는 신자노릇하며, 절에 가서는 불교도 행세를 하는 불안한 그들의 모습을 바로 알아야겠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종교에 관해서는 중립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걸 환영해야겠다.
어차피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도 기독교 신앙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중적인 크리스천 지도자가 되었을 때 교회를 빙자한 엉뚱한 정치를 할까 걱정스럽다. 또한 기독교 대통령을 빙자해서 교회 지도자들이 뻔질나게 정치행보에 가세할까 두렵기도 하다.
최근 미주의 모 교단은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한 회기에 선출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총회장이 되려고 은근하게 물밑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권력이란 속물은 교회 깊숙이 침투하여 서로를 이간시키는 장난감이 되기 쉽다.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년짜리 총회장이 되기 위해 가증스럽게 자기를 선전하는 분위기를 보면 ‘머지않아 교회도 강도 높은 지진처럼 흔들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교단 총회장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했다는 번지르르한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교회의 개혁과 바른 신앙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애썼다는 가슴 찡한 모습을 모두는 보고 싶어한다. 아무래도 이러한 기대는 이상한 나라에서 보아야 할 환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하나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할 것을 권했다. 첫째는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후에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일을 했다. 둘째 아들도 형과 똑같은 일을 하도록 지시 받았지만, 가겠다고 답하고서는 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어떤 교훈을 주려 하셨을까? 둘째처럼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우선 듣기 좋은 말로 대충 넘어가고자 하는 당시 교권자들을 포함한 현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고하신다. 정치는 언제나 둘째처럼 수많은 약속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 듣기 좋은 공약과 약속을 내세우는 정치에 교회가 함께 춤출 순 없지 않는가!
교회가 신앙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때 정치 지도자들은 교회를 견제세력으로 의식해 바르게 일할 것이다. 교회는 정치의 힘에 편승하고 싶은 유혹을 단절할 참 자유의 힘과 리더십을 얻게 될 것이다.

손경호 (보스톤 성령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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