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승욱, 기숙사로 가다

2007-05-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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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11까지 기숙사로 승욱이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승욱이를 낳은 날, 담당의사에게 승욱이 눈에 관한 이야기를 듣던 날, 미국으로 데리고 온 날, 미국에서 눈수술 한 날, 눈수술 실패한 날, 귀도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안 날, 학교를 처음 보내던 날, 처음으로 혼자 스쿨버스를 태워 학교에 보낸 날, 보청기를 만들어준 날, 와우이식을 준비하던 날, 와우이식 수술을 한 날, 처음 승욱이의 스피치 교육을 받던 날. 그리고 모든 것이 안정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까지 지난 7년간의 일들이 모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몇 줄 안되는 글로 표현하기엔 지난 7년이 나에겐 너무 버겁고 긴 시간이었다. 다시 7년을 그렇게 살라고 하면 난 분명 도망갈 것이다. 승욱이를 키우면서 매일 베개에 눈물을 묻히고 잤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그런 아들을 내일 기숙사로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역시나 승욱이도 나도 밤새 한숨 자지 않고 아침을 맞았다.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간병 일을 시작하셨다. 기숙사에 함께 데려다 주고 싶어하셨지만 분명 눈물을 철철 흘리실 것을 알기에 일하러 가시라고 하고 나하고 승욱이만 LA로 출발했다. 차에 태우자마자 깊은 잠에 든 승욱이가 어디를 가는지 알바 없다는 듯 단잠을 자고 있다.
‘승욱아, 너를 키우면서 남들이 결정해 보지 못한 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했던 엄마가 이번 결정만큼은 너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아리단다. 모든 것이 너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고 너와 우리가족 모두를 위한 결정이었어. 제일 먼저 지난 7년간 엄마의 사랑을 똑같이 받지 못한 승혁이형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할아버지를 잃은 할머니를 엄마는 더 돌봐 드려야 하고, 또 엄마도 이젠 일을 해야 하거든 그래야 우리 식구가 살아갈 수 있단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했어.’ 변명아닌 변명을 마음속에 생각하는 동안 차가 기숙사에 도착했다.
기숙사 관계자들이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왔다. 자는 승욱이를 깨워 이곳이 어딘지를 설명하고 승욱이가 쓸 방으로 들어갔다. 가지런히 정돈이 된 방에 알록달록 장식들이 승욱이 나이에 맞게 잘 꾸며져 있다. 기숙사 디렉터에게 승욱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가지고 온 승욱이 물건들을 설명해 주었다.
새로운 곳에 오니 승욱이가 내 손을 꼭 잡고 모든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기숙사 사람들이 너무 귀엽다고 만지려 해도 얼음 왕자 승욱이는 절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바짝 긴장하고 있는 승욱이를 좀 안정시켜야겠다고 다들 잠깐 방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난 승욱이를 꼭 안았다. “우리 아들, 낯선 곳에 와 있어서 너무 이상하지? 여기가 우리 승욱이가 지낼 곳이야. 이제 새로운 기숙사,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이 우리 승욱이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아주 많이 혼란스러울 것을 엄마는 알아. 지금 엄마도 너무 걱정스럽고 두렵단다. 그런데 엄마는 우리 승욱이를 믿어. 너는 언제나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씩씩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아이인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을 잘 적응하고 잘 지낼 거라 믿어. 엄마가 우리 승욱이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아들 사랑한다.”
승욱이 머리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니 승욱이가 손을 올려 내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승욱이가 말을 할 줄 알면 이 순간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집에 다시 가자고 할까, 아니면 걱정말라고 잘 있을 거라고 할까, 아마 집에 다시 가자고 했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앞으로 우리 승욱이를 5주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의 발목을 더 붙잡고 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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