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캘리포니아 미션 이야기 <4>

2007-0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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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여왕’샌타바바라 미션

로마 건축양식에 핑크빛 우아한 자태
수도사들이 독학하며 직접 설계·건축

로스앤젤레스에서 101번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140km 올라가면 샌타바바라가 나온다.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아름다운 샌타바바라는 전통과 기품이 배어있는 멋진 곳이다. 그래서 샌타바바라는 ‘미국의 리비에라’(American Riviera)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샌타바바라 미션이 있다. 샌타바바라 미션은 1786년에 설립된 10번째 미션으로,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다워 ‘미션의 여왕’이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로마 건축양식의 핑크빛을 띠는 우아한 미션으로, 마치 여왕의 옷차림처럼 화려함이 인상적인 곳이다. 고귀한 여왕의 신분처럼 미션은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미션의 회랑에 서면 샌타바바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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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적 풍경의 미션 라프리시마. 미션의 정형인 사각형 모양이 아닌 일자형을 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스페인에서 건너온 수도사들은 건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가톨릭 전파를 위해 캘리포니아라는 낯선 땅에 온 이상 부족한 인력과 장비로 어떻게든 미션을 건축해야 했다. 수도사들은 건축 관련 책을 찾아 공부해가면서 미션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다.
아름다운 샌타바바라 미션도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미션 건물 양쪽 두 개의 탑을 올리는데 자그마치 5년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중 유일하게 샌타바바라 미션에는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항상 신부가 거주하면서 미션을 관리하고 미사를 집전해 왔다. 그래서 지금처럼 좋은 상태로 미션이 보존되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샌타바바라에서 101번 도로를 따라 다시 70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덴마크 마을 솔뱅이 나온다. ‘해가 비추는 들판’이란 뜻을 가진 솔뱅은 1911년 덴마크에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처음 생긴 대니시-아메리칸의 정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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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여왕이라 불리는 샌타바바라 미션의 전경>

1804년 19번째 미션 샌타이네즈가 샌타이네즈강 근처, 지금의 덴마크 마을 솔뱅에 세워졌다. 단아하고 자그마한 미션은 물론 덴마크 스타일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미션의 전통을 이어 받은, 소담한 미션이다. 작은 기념품점을 통해서 미션 안으로 들어서면 미니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신부들이 미사 때 입던 의상들이 시대별, 국가별로 전시되어 있다.
유물 전시관을 지나면 미션의 예배당이 나온다. 예배당의 천정은 반듯한 일자형으로 되어 있고, 장식 없는 단순한 아치형의 창문이 양쪽 벽을 따라 나란히 나있다.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기다란 미션 내부를 밝히기엔 미약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더 어울리는 조도라는 생각이 든다.
미션 샌타이네즈 예배당의 정면은 한마디로 독특하다. 다른 미션 본당의 내부가 대부분 붉은색 위주였던 반면에 이곳은 초록색 일관이다. 제단 앞의 벨벳 테이블보마저 짙은 녹색을 띠어 온통 그린의 물결이다. 미션 예배당에서 초록색이 주는 색다름은 신선했다.
미션을 돌아보며 느낀 점이지만 새로운 땅에 세워진 개척지 미션의 성격상 예수나 마리아상 못지않게 수도사들의 동상이 많이 모셔져 있다. 아무 것도 없었던 척박한 땅에 미션을 세우고 사람들을 모으고 가톨릭을 전파하고 하는 활동의 중심에 섰던 초기 수도사들은 성인의 모습으로 비추어 졌으리라. 역시 이곳 샌타이네즈 미션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상과 함께 왼편에 수도사의 상이 모셔져 있다.
캘리포니아 미션 21개는 같은 목적으로 엇비슷하게 지어진 미션들이지만 하나하나 찾아가보면 조금씩 다 다르고 또 각각의 미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하나씩은 꼭 있어서 각각의 미션을 찾아가는 마음은 항상 기대가 된다.
솔뱅에서 태평양이 있는 서쪽으로 30km정도 가면 캘리포니아 미션 중 가장 수수하고 소박한 미션 라프리시마가 나온다. 라프리시마 미션은 넓은 땅위에 세워진 목가적 풍경을 가진 미션이다. 미션은 우거진 수풀 속에 감춰져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조그만 목조 다리를 건너가면 밖에서 보이지 않던 광활한 들판과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주황색의 미션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큰 미션이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미션 앞까지 걸어 들어가서 들어온 곳을 되돌아보니 낮은 구릉이 요새처럼 미션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미션 앞으로 난 길은 포장이 안 되어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묻어난다. 미션의 뜰은 자연 상태의 들판에 가깝다. 일부러 가꾸어 놓은 것도 없으며 멀리 산이랑 구릉으로 갇힌 지역인데도, 넓어서 그런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당시 수도사들이 생활하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해 놓은 유일한 미션으로 인공미가 묻어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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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의 장식이 인상적인 미션 샌타이네즈의 예배당>

미션 라프리시마는 1787년에 지어진 11번째 미션이다. 거의 대부분의 미션이 안뜰을 가운데 두고 사각형의 모양으로 지어졌는데 라프리시마 미션은 독특하게도 긴 일자형의 건물로 되어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큰 지진에 미션이 붕괴된 후 새로 지으면서 일반적인 사각형의 모양이 아닌 일자로 길게 늘어선 건물을 짓게 되었다. 일자형 모양의 건물은 지진과 같은 재해 때 사람들이 더 빨리 피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어느 신부의 아이디어에 의해 설계되었다 한다.
미션에는 방과 부엌이 하나씩 짝을 맞춘 아파트 형식의 주거공간이 있다. 미션의 아파트에는 퇴역한 군인이나 그 마을에서 지도자급인 인디언이 들어와 살면서 미션의 목장을 관리하였다고 한다. 흙바닥의 부엌에는 덩그러니 아궁이가 하나가 놓여있고 투박한 놋그릇 몇 개가 놓여 있다. 부엌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나가면 딱 옛날 우리네 시골집 뒷마당 같다. 미션의 대장간은 방금 전까지도 실제 누군가가 일했던 곳처럼 생동감 있게 그 당시의 모습대로 꾸며져 있다. 베를 짜는 방도 마찬가지다. 실이 감긴 물레가 있어서 금세라도 누군가 다시 들어와서 물레를 돌릴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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