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6-1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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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 왕의 돌기둥

구미인들이 한 동안 이 세상이 다 자기들만의 사냥터인 줄로 알고 헤집고 다니던 시절, 그 가운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는 영국인들이 우아하고 점잖게 살롱에 모여 앉아 향기로운 찻잔을 들고서는 자기들끼리만의 교양이니 신사도니 하는 것들을 가꾸어 가던 호시절이었을 것이다. 제 딴에는 기발하다는 어느 발칙한 인사가 처음 발설했겠지만 인도를 다 주어도 셰익스피어하고는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생겼다는데, 앞뒤 모르는 여러 피압박 식민지 백성의 후예들조차 인도 사람들의 기분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 아둔하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교양을 갖춰야 해, 영어 영문학만큼은 웬만치 알아야 해 하고 당연시 해 왔다.
그러나 만약 내가 여기서 전 유럽을 다 주어도 아쇼카 왕의 돌기둥 하나 하고도 바꾸지 않겠다고 발설한다면 이게 무슨 생뚱맞은 얘긴가 하실 분들도 많으시겠다.
인도 문명이 낳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 가운데 두 번째로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 대륙의 대부분을 다스리던 마우리야 왕조의 세 번째 임금인 아쇼카 왕을 들 수 있겠는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중국 불교를 선양한 양무제, 나폴레옹과 링컨, 간디를 합쳐서 그 좋은 점만 뽑아 놓아도 이 분에게는 못 미칠 것 같다.
왕은 일찍이 불교에 귀의했지만 계속되는 정복 전쟁을 지휘하느라 살생을 피할 수 없었는데 특히 인도를 통일하기 위하여 남방의 칼링가를 정벌할 때에 수십만명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는 크게 뉘우치고 발심하였다. 왕은 이 때 서원하기를, 다시는 절대로 폭력에 의한 정복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며 진정으로 불법을 따르고 사랑하며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겠다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진리의 다스림으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전륜성왕의 길이었다.
왕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등 만방으로 포교사를 보냈으며 자신의 아들과 딸을 스리랑카로 보내 불법을 전하게 했다. 왕은 천명이 모인 불경의 세 번째 결집을 주선하였는데 입으로만 전해 오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때 비로소 글자로 옮겨졌다.
인도 전역에 고아원과 양로원, 학교를 세웠으며 병자는 물론이고 동물들마저 보살피기 위해 곳곳에 병원을 지었고 여행자를 위한 휴식처를 만들었다. 동물을 제물로 삼는 일을 금했고 궁중에서도 채식을 했으며 자신의 사냥하는 버릇을 없앤 대신 부처님의 사적을 순례하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비폭력과 평등의 원칙을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 특히 우리를 일깨우는 것은 모든 종교가 서로 화목하고 협력하고 관용할 것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이다. 왕은 자신의 이런 생각을 바위나 돌기둥에 새겨 나라안 곳곳에 세웠는데 무상한 세월에 다 흩어지고 서른 네 군데에 글귀가 남아 있다. 그 돌기둥의 이지러져 가는 구절 중에 이런 것이 있으니, 혹여 유럽이 아직도 이전의 그 오만스런 유럽이라면 나는 그 대륙 전체를 이 한 구절과도 바꾸지 않으리라.
자기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무시하고 깎아 내리는 것은 그것이 눈먼 충성심에서 나왔든 제 종교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든 결국 자기 종교에 더 큰 해악을 끼칠 뿐이다. 조화가 최선이라, 모두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고 서로 존경하도록 할지니라.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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