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종원씨 힘내세요’

2006-1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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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 번째 토요일에, 우리 교회에서 주최해서 남을 위해 내가 뛰는 마라톤을 준비하여 근 2,000여 명이 함께 LA의 중심가를 달리고 걷고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감격적인 모습들이었습니다. 윌셔가를 메우고 웨스턴을 돌아서 올림픽으로 옮겨가는 사랑의 물결 말입니다. 평소에 운동에 게을렀던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5킬로미터 마라톤이었습니다. 많은 자극과 도전을 받으며 남보다 유난히 많은 땀을 흘리며 웨스턴에서 7가의 오르막이 원망스러워질 때였습니다.
그때 내 옆에 체구가 그리 크지 않으신 아주머니가 아들로 보이는 커다란 청년을 휠체어에 태우고 비지땀을 흘리며 같은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제가 좀 밀까요?” 여쭸더니 반갑게 아들이 탄 휠체어를 제게 넘기셨습니다. 친절을 베풀어보고 싶어 엉겁결에 맡게 된 일이지만,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드님의 덩치 때문인지 보통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되돌려 드릴 수도 없어서, 충격을 감춰가며 열심히 밀며 뛰었습니다. 고마워하는 어머니는 연신 내 뒤를 따르며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행히 여러 교우들이 번갈아 가며 나누어 수고한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마라톤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상식 때,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특별상을 받은 그 청년은 자기의 이름이 종원이라고 밝히며 미리 만들어 둔 간증지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간증지의 글을 읽으며 불편한 몸을 가지고 남을 위해 부모와 같이 마라톤에 참가한 종원씨는 4년 전쯤, 불의의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살아야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 죽은 목숨으로’ 소망 없어 보이는 수술을 여러 차례 지나서, 겨우 목숨 건진 불구의 청년으로 우리와 함께 뛰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망가져 버린 듯 안 삶을 두고, 종원씨는 오히려 하나님께 고마워하고 어둡고 고통스런 수많은 밤들 사이로 감사의 조건을 찾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픔은 두려움의 존재이면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친구인 것 같습니다. 누구도 원치 않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거룩한 삶 앞에, 또 나는 부끄러운 목사가 되었습니다. LA의 10월 하늘은 종원씨의 마음만큼이나 싱그럽고 맑았습니다. 나는 내 성한 두 다리로 걸을 때마다, 종원씨와 달렸던 거리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절을 시작으로 감사연습을 매일 할겁니다. 종원씨 힘내세요.

곽 철 환 목사 (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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