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에버 21’장도원 회장의 신앙간증

2006-10-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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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22년만에 ‘포에버 21’을 연매출 10억달러(올해 예상)기업으로
키운 장도원 회장. 한인 최대 기업가인 그는 굳건한 신앙인으로도 유명하다.
‘선교의 큰손’이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의 인물이면서도 언론과 인터뷰를 안하기로 유명한 그가 한인 젊은이에게 꿈을 주고 도전을 던지는 간증을 했다. 22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프레시 2006’에서다. 검은 캐주얼 조끼를 입고 원고 없이 진행된 ‘이민 사회에서 갈 때까지 간 사람’의 간증을 요약한다.

1년에 100일이상 해외출장 가도 새벽기도 안걸러

# 나오지 않는 영주권
5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4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유한 집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라며, ‘도리짓고 땡’이나 ‘섰다’ 등 화투를 즐겨 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부모님들이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그때부터 공부에 손을 놓았는데, 고등학교까지 영주권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미국을 방문해 영주권을 얻기 위해 돈도 많이 썼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 “커피 시키신 분?”
고교 졸업 후 음악다방에 DJ로 취직했다. 어릴 때 꿈이 가수였기 때문이다. 서울 명동의 다방에서 일할 때 다방 운영 방식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때는 커피 배달 주문이 많았는데, 배달이 늦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커피 배달 사업을 시작했다. 임대한 1평 공간에서 대박이 터졌다. 6잔 이상 주문하면 직접 배달했다. 그때 배달을 가장 많이 시킨 사람 중 하나와 결혼했다.

# 쓰리잡으로 시작한 이민
누나가 마침내 시민권을 받아 가족을 초청했다. 미국서 첫 일은 햄버거 가게 접시닦이. 가족 부양이 불가능해 오후 1시까지 접시를 닦고, 밤 9시까지 기름을 넣고, 자정까지 청소를 했다. 그래도 십일조는 꼭 새 지폐로 냈다.
한번은 개스값을 아끼려고 2블럭 떨어진 마켓에 걸어가다 권총강도를 만났다. 그때 100달러 지폐를 뺏겼는데, 이 돈을 잃으니 죽는 게 낫겠다 싶어 강도를 막 쫓아가기도 했다.
주유소에서 일할 때 고급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 하는지를 물었다. 거의 다 옷가게를 한다고 해, 나도 옷가게를 하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옷가게 일자리를 하나 얻어 비즈니스를 배웠다.
2년 뒤 하일랜더 파크에 옷가게를 하나 얻었다. 6명이 이미 망해나간 곳이었다. 엄청 원망했지만,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가게 인테리어도 직접 하니, 개업 1년만에 매출이 3만달러에서 70만달러로 증가했다.

접시닦이·주유소 등‘쓰리잡’
고급차 타는 사람 직업이
“옷가게”라고 해 의류업 시작

한때는 골프와 술로 방황도
이슬람국가 선교에 열정
“목적 있으면 기적도 만들죠”

# 신앙의 재발견
빌딩을 사러 이민 6년 만인 1986년에 한국에 갔다. 내가 뼈 빠지게 일하며 돈을 모으는 동안 한국에 남은 친구들은 편하게 돈을 벌고 있다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골프장으로 갔다. 골프는 2차 저녁식사와 3차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 사이 아내는 경마에 빠졌다. 경마장에서 아내는 말을 샀고, 경마에 베팅도 했다. 그런 아내가 밉지 않고, 오히려 불쌍하고 더 예뻐 보였다. 방황하는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교회를 가자고 했다. 아내 손에 끌려 교회에 들어설 때 들리던 성가대 찬양소리에 울음이 나왔다.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반대쪽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예배 끝날 즈음에는 너무 많이 울어 숨길 수가 없었다.

# 믿음의 힘으로
1년에 100일 이상 해외 출장을 간다. 시차 때문에 고생하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한다. 어떨 때는 너무 힘들어 알람시계가 고장이 났으면 하고 바랜다. 눈이 떠지지 않을 때는 침대에서 일부러 굴러 떨어진다.
이유 없이 공격을 받을 때도 있다. 최근에는 근거 없는 모함을 받기도 했다. 회사 샤핑백에 요한복음 3장16절을 왜 쓰냐고 언론에서 질문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 일일이 대답하지 말라고 응답하셨다. 하나님과 나만 아는 얘기를 굳이 나서서 밝힐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 선교를 다녀왔다. 이슬람 국가에 크리스천 학교를 세웠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그 학교를 새 발전 모델로 삼을 계획이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 이메일을 체크했다. 한 형제가 간에 문제가 생겨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곧바로 병원에 가 밤새 그 형제 옆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 형제가 살아나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영어도, 컴퓨터도 가르칠 수 있잖아요’라고 애원했다.
그날 밤 이 형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기적이라고 했다. 사명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으면 절대 죽지 않는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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