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의 그림자도 없다

2006-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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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한니발의 최후

투니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영웅인데도
현지에는‘한니발 박물관’조차 부재

서양 고대사에서 3대 명장을 꼽으라면 기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 카르타고의 한니발(사진), 로마의 스키피오를 꼽고 싶다. 이 세사람이 보여준 역사에서의 등장과 퇴장은 너무나 드라마틱해 누가 평가해도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부여 받을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니발은 코끼리를 앞세우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해 로마를 거의 멸망직전까지 몰아 넣었던 전술가이고 젊은 스키피오는 이같은 풍운의 로마를 한니발의 위협으로부터 극적으로 구한 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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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 왕국의 자취는 흔적도 없고 로마의 유적만 남아있는 투니시아의 카르타고.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정복한후 이곳에 목욕탕부터 지었다>


알레산더대왕의 전술은 ‘영웅 푸르다크전’에 올라있고 스키피오의 일생은 로마사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만 한니발에 관한 기록은 극히 드물어 그가 역사의 무대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사가들 정도다. 카르타고시는 투니시아의 수도 투니스의 교외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보는 한니발의 역사자료와 한니발 박물관등 서양문화에 대항하는 의미에서도 뭐가 굉장히 많을줄 알았다. 기자는 한니발의 출생지인 투니시아의 카르타고시 방문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컸었다.
그러나 이게 왼일인가. 가서 보니 아무것도 없다. 몽골에 징키스칸 박물관이 없는 것이나 비슷한 현상이다. 박물관은커녕 국립박물관에도 한니발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고 기원전 300년의 해양왕국 카르타고(현지에서는 카르타주라고 부른다)의 유적이라고는 눈을 씻고봐도 찾아볼 길이 없다. 오히려 로마인들의 유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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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을 투니시아인들이 상상해서 그린 그림>

왜 카르타고는 지상에서 송두리채 모습이 사라졌는가. 그것을 확인하게된 것이 투니시아 현장확인의 유일한 열매다. 카르타고와 로마와의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쟁은 3차에 걸쳐 150년동안이나 계속(BC300-BC150) 되었다. 카르타고는 세차례 전쟁에서 세 번 다 패했다. 제2차 포에니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역사상 로마인들의 가슴을 가장 서늘케 했던 전쟁이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칸나에 대전’에서 로마군을 거의 몰살 시킨것처럼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자마평원에서 한니발대군을 궤멸 시켰다. 한니발은 흑해의 비티니아라는 조그만 왕국으로 도망쳐 숨어 있었으나 로마군이 여기까지 좇아오자 평소 반지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한니발이 죽은후 50년이 지나 카르타고가 재도전하자 한니발의 망령에 지친 로마는 카르타고를 지상에서 아예 없애기로하고 집한채 남기지않고 시전체를 불질렀다. 이 전투에서 카르타고 남자들은 끝까지 싸우다가 죽거나 자살했다. 남은 5만여명의 노인과 어린이, 여자들도 몽땅 외국에 노예로 팔아 버렸다. 700년이나 계속되던 카르타고왕국이 지중해 지도에서 없어진 것이다. 그후 로마는 카르타고를 직할 식민지로 만들어 직접 다스렸으며 로마식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오늘의 투니스와 카르타고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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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니시아는 미인의 나라다. 한니발의 부인도 절세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말썽 많던 인물이 죽으면 얼굴을 땅을 향한채 파묻는다. 그렇게하면 환생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있다. 로마인들은 두려운 상대를 멸망 시켰을 때 재기불능을 원하는 의미로 그땅에 소금을 뿌린다. 제2의 한니발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 로마인들이 정복후 소금을 뿌린 도시가 바로 카르타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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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유적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투니시아 현지의 가이드>

clee@koreatimes.com
<이 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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