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2006-09-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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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저는 버스를 먼저 탄 사람일뿐입니다

“여보세요? 혹시 저에게 전화하신 분… 저는 김민아라고 하는데요?”
“아… 승욱이 어머님이시죠? 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은별이 아빠예요. 일주일 전에 미국에 왔어요. 가족이 함께 살려구요.”


지난 가을 아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한국에 여자아이가 시각장애로 태어나서 애기 아빠가 미국으로 오는데 한번 만나주었으면 하는 전화였다. 난 기꺼이 만나겠노라고 약속장소를 정하고 만남을 가졌다. 젊은 아빠의 얼굴을 보니 자신감이 하나도 없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우리의 만남이 하나님 뜻이었는지 한국에서 승욱이 안과 의사선생님과 한국에서 온 애기 아빠의 애기하고 같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젊은 아빠의 얼굴을 보니 예전 나와 남편의 얼굴이 스쳐간다.

난 수백 마디의 말로 위로를 해주기보다는 승욱이 학교를 한번 보여주겠다고 했다. 약속을 정하고 승욱이 학교투어를 해주었다. 각 교실에서부터 치료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또 어떤 서비스가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었다. 전체 학교를 둘러보니 젊은 아빠의 얼굴에서 희망이 보인다.

난 “언제나 장애아이는 걱정이 없어요. 항상 보면 장애아이의 부모님이 걱정인 것 같아요. 절대 좌절하지 마시고 소망을 갖으시길 바랄게요. 앞으로 별이 부모님도 저와 같은 길을 가셔야 하는 데 맘 단단히 먹고 화이팅!! 하세요. 아셨죠?”
그렇게 헤어지고 까맣게 잊었던 별이 가족이 미국 땅을 밟았다고 연락을 받은 것이다. ‘헉? 이런, 용감한 가족 같으니라고…’ 미국에서 나를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미국으로 오는 수속을 바로 밟고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온 것이다.
난 우선 승욱이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온 시각장애 아기를 받아달라고 무조건 들이밀었다. 내가 들이밀만한 사람은 교장 선생님뿐이다. 승욱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는 것은 장애아동의 조기교육이다. 그분의 교육철학은 언제나 장애아동들이 조기 교육만 잘 받게 되면 사회생활과 개인생활이 거의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는 거다. 나 역시도 동감!!
학교에 찾아가서 교장 선생님과 은별이 가족과 함께 만난 그 다음주부터 은별이가 승욱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놀라워라 놀라워~~ 승욱이도 학교를 참 빨리 간 케이스인데 은별이는 그걸 더 앞질렀으니 보통 기록갱신이 아니다. 은별이 엄마아빠가 너무 감사해서 어쩌냐고, 나에게 연신 머리를 숙인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부터 6년 전, 승욱이가 눈수술을 받으러 왔을 때 참 많은 것으로 도움을 주신 분이 있다. 그 당시 집사님이셨던 분이 모든 통역에서 예약 그리고 픽업까지 손수 다 해주셨다. 간호사이셨기에 병원에서의 일 처리는 도맡아서 해주셨었다. 난 어떻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는지 몰라 봉투에 감사의 표시로 적은 돈을 넣어드렸다.
그때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 “승욱이 엄마, 난 미국이란 버스에 승욱이 엄마보다 조금 먼저 탄 사람일뿐입니다. 그러기에 새로 버스에 타려는 사람이 길을 모르면 가르쳐 주고, 차비가 없다면 조금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승욱이 엄마도 앞으로 살면서 다음에 미국 버스 타는 사람에게 내가 승욱이 엄마에게 했듯이 똑같이 해줘요. 그게 저에게 갚는 거예요.”
난 그분을 붙잡고 울면서 “저는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럴 날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했던 그녀가 6년이 지난 후에 이렇게 똑같이 받은 것을 갚고 있다.
미국 의사 선생님이 승욱이 눈수술 실패했다고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볼 때도 무슨 말하는 지도 몰라 배시시 웃고 앉아 있었던 나, 언제나 길을 몰라서 한번도 한번에 목적지까지 찾아가지도 못했던 나, 아는 사람도 하나 없던 나, 장애에 관해 정보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던 나… 그런 내가 다음 버스 탄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으니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은별 아빠엄마, 미국 버스 안 장애 우대석에 앉아있는 내 옆자리에 타신 것을 감사해요. 내가 6년 먼저 버스에 탄 사람으로서 길을 가르쳐준 것뿐이에요. 다음에 누군가 은별이네 옆자리에 앉으려거든 언제든 자리도 비켜주고, 길도 가르쳐주고, 차비도 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저를 향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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