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새 쫓아가기 프로젝트

2006-09-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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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나는 지금부터 비극에 대해 말하려 한다.
지난 7일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 매거진 오드리가 주최한 패션쇼 리셉션장. LA 패션 피플들이 몰려든 이 곳은 무대 밖 패션쇼장을 방불케 했다. 물론 개중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혹은 블랙 수트라는 사무실용 드레스 코드도 있었지만 역시 패션쇼 구경꾼답게 대담 혹은 섹시 코드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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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보다는 몸’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해 보이는 하이디 클럼. 이미 한 아이의 엄마지만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몸매로 세상 아줌마들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뒤가 깊게 파인 백 오프(back off) 블랙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20대 초반의 아가씨, 클로에 스타일의 풍성하지만 노출이 심한 크림색 쁘띠 드레스를 입은 20대 후반의 행사 관계자, 최근 유행하는 스키니 진을 몸에 꼭 맞게 입고, 상의는 줄무늬 롱코튼 티셔츠를 받쳐입고 굵고 큰 벨트를 두른 모델 같은 참석자 등 눈이 돌아갈 만큼 멋진 차림의 여성들이 즐비했다.
참석자들 중엔 중년여성들도 눈에 띄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명품 스타일의 한 벌 정장을 차려 입거나 좀 더 신경 썼다 싶으면 쇼윈도에 걸어놓은 코디 의상을 자기 사이즈에 맞춰 그대로 입고 온 패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패션은 어쨌든 고가이며 유명 디자이너 제품이기에 눈이 가야 마땅하거늘 ‘어머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는 바로 쟤야’ 하며 눈이 돌아가는 이들은 결국 20대 초중반의 젊고 싱싱한 체격의 젊은 처자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야 갭이나 좀 더 써야 디젤 정도에서 20~200달러 안쪽에서 파티용 옷차림을 건졌을 터인데 그들의 싱싱한 육체는 옷 가격을 불문하고 옷을 천배쯤 더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의 ‘컬러 버전’ 정도를 두르고 등장한 30대 중반의 아줌마인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명품으로 온몸을 두른 40대 중반의 아줌마들은 20달러짜리 갭 티셔츠의 멋스러움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를 포함한 그 아줌마들은 질투에 사로잡힌 뱁새가 되어 갭을 걸친 위풍당당한 황새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따름이다.
이 비극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결국 패션은 장자가 꾸는 나비 꿈보다 더 허망한 것을 깨달은 이 아줌마는 아무래도 개인 트레이너가 있는 피트니스 센터를 찾아야 한다며 수선을 떨어보지만 이도 얼마나 현실 가능한 지는 미지수다.
이 뱁새 여기자의 비보를 접한 선배 여기자는 이제서야 비극의 현실을 맞닥뜨린 후배가 안타까웠는지 ‘너무 기죽지 마라’며 ‘언제 한번 중년 아줌마들의 모임에 나오면 상대적 박탈감이 확 줄어들 것’이라며 뜨거운 격려와 위로를 보내왔지만 이 깊은 상실감은 며칠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밤 가을 컬렉션을 들여다보며 머스트 해브 아이템 리스트를 짜느니 저렴한 값에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주는 피트니스 센터를 알아보는 것이 더 현명할 듯 싶다. 결국 내가 짝사랑하는 알렉산더 맥퀸이나 비비안 웨스트우드 할머니도 그들이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고 재단하는 몸은 결국 하이디 클럼이나 나오미 캠벨과 같은 ‘신이 내린 몸매’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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