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 잉어포

2006-09-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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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살짝 간 녀석이 하나 입소했다. 늘 혼자였던 그 아이가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신과 이야기도 해주고, 관심도 가져주니 더 없이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크진 않지만 참으로 웃지 못할 사고를 친 것이다. 선교회 앞쪽 패티오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은 벌칙을 받은 형제들이 열심히 땅을 파고, 돌을 치우고 홈디포에 가서 커다랗고 두꺼워서 움푹 패인 까만 고무 다라이 두 개를 사다가 땅속에 묻고 그 안에 물을 가득 받아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 예쁜 돌들로 장식을 하고, 작은 분수를 사다놓고는 개구리밥을 가득 띄워 보기에도 그럴싸한 작은 연못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연못 밖에는 방울토마토 나무를 심어놓았고, 군데군데 작고 소담스러운 나무들로 빈 공간을 꾸며놓았다. 한쪽 연못에는 작은 거북이 3마리, 큰 거북이 2마리가 살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어항에서 기르다가 제법 청소년 잉어 정도로 큰 잉어들 열 대여섯 마리가 살고 있었다.
금빛 색깔을 찬란히 뽐내는 금빛 잉어, 빨간 잉어, 희색과 빨간색이 점점이 박혀 있는 점박이 잉어, 하얀 잉어, 까만 잉어, 그리고 엷은 주홍빛이 나는 위엄이 있는 잉어 등등 PK가 선교회에서 제일로 아끼고, 관심을 두고 사랑하는 것들이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삭막한 선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고, 아이들이 가끔씩 나와서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들을 보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 연못을 참 좋아하고 잉어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꼈었다.
사실 나는 그 잉어가 클수록 값이 비싸다는 사실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몇 년 전에 10달러씩 주고 산 것들이 지금 정도의 사이즈로도 몇 십달러씩 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키우면 한 마리 당 1,000달러에서 그 이상도 받는다고 하니, 선교회에 떼돈 버는 일이 아닌가!
이런 나의 못된 속마음을 하늘에 계신 분이 아셨는지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녀석이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여름 그날 따라 숨도 못 쉴 정도로 뜨거운 태양 때문에 죽을 것 같이 더웠던 날이었다. 에어컨도 없는 한증막, 사우나, 찜질방 같은 QT 룸에서 한 시간 정도를 공부하고는 조금이라도 시원한 기분을 만끽할까 하여 물이 흐르는 연못가로 나왔는데…
“악~ 누가 잉어를 다 죽여놨어요. 잉어가 다 죽었어요” 하는 것이었다. 잉어가 다 죽어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비참하게… 잉어들이 죄다 밖으로 뛰어나왔는지, 집단 탈출을 시도했는지, 연못 밖 돌멩이들 사이에 길게 누워서 햇빛에 선텐을 한 채로 바짝 구워져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잉어포가 되어 있었다.
“누가 그랬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화가 나서 모두들 씩씩거리는데 녀석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뒤쪽으로 몸을 빼고 있었다.
“네가 그랬지?” “아뇨… 뭘요?” 멀쩡하게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네가 잉어를 죽였지??”
“아뇨. 난 잉어 안 죽였어요. 그냥 연못물이 뜨거워서… 그냥 잉어들이 더울까 봐. 밖에서 쉬라고… 너무 수영을 많이 해서 피곤할까 봐 내가 밖에 내놓았거든요. 난 잉어 안 죽였어요.” 하~ 할 말이 없었다. 잉어들이 더울까 봐 밖에 내놓았다니… 잉어들이 헤엄치는 것이 너무 측은하여 그만 일하고 좀 쉬라고 하였다니……
나는 저게 얼마짜린데, PK는 아~ 자연의 아름다운 정서를 파괴시키다니… 선교회 한 지붕 밑의 동상이몽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이후 선교회 공사 전까지 그 연못은 아주 볼품없는 연못이 되어 한쪽에 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잉어가 없는 연못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연못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만으로 남을 돕겠다는 것, 진정한 남을 위한 배려가 과연 무엇일까?
녀석은 크게 혼나지는 않았다. 모두가 섭섭하고 속상했지만 녀석을 아무도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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