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9-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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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후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았다. 그 자리에서 내 자신이 왜 그리도 주눅이 드는지, 죄책감도 아닌 것이 미안함도 아닌 것이 말도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가족들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고 있다. 아버지 임종의 모든 책임을 마치 내가 지고 있는 양 눈치를 보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엄마가 먼저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동안 아버지 장례 치른다고 다들 수고했다. 지금부터 아버지 살아계실 때보다 더 열심히 살고 예수 잘 믿어야한다. 지금 이제 와서 누구 때문에 왜라는 말은 없다. 왜 아버지는 저렇게 빨리 돌아가셨을까, 왜 미국은 오셔가지고, 왜 민아랑 같이 살아서, 왜 그렇게 일만 하시다가… 등등 왜라는 질문은 없다. 그저 하나님의 때에 아버진 하늘나라로 가신거다. 행여나 민아나 승욱이 때문에 아버지가 저리 일찍 돌아가셨다고 생각지도 마라. 우린 그동안 선한 길로 최선을 다해 온 것뿐이다. 민아도 승욱이 키우느라고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더 힘들게 살았다. 밤잠 한번 편히 못 자고 언제나 가슴 끓이며 눈물로 승욱이 키워온 것이다. 우린 가족이니까 서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야한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형제우애와 가족사랑이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서로 아끼며 살면 되는거야. 알았지?”
아무도 엄마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저 난 내 슬픔에 눈물이 난다. 어떻게 엄마는 미안한 내 마음 알고 저런 말을 할까. 역시 우리엄마는 언제나 현명하시다. 나를 변론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우리를 이끄시려는 것을 난 안다. 자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사람이 나쁜 생각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엄마는 아예 우리의 나쁜 생각을 차단하시려는 것이다.
한국에서 오신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도 목사님도 오빠네 식구도 남편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이 벅적벅적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모두가 빠져나간 집이 덩그라니 크다. 엄마와 승혁이와 승욱이 그리고 나… 한 사람 없는 것이 왜 이리 빈자리가 큰지 모르겠다. 집안이 왠지 썰렁한 것이 집에 온기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저녁에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가을냄새가 너무 눅눅하다.
승욱이가 겨우 잠든 늦은 시간 ‘승욱이 이야기’ 글을 쓰기 위해 아버지방 앞을 지나 컴퓨터 앞에 앉으려고 했다. 옆 눈으로 보니 아버지 쓰시던 방의 문이 조금 열려있다. 장례식 후에 한번도 아버지 방에 들어가질 않았다. 여러가지 일로 계속 분주해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조차 없었다.
열린 문을 밀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엄마가 아버지 입던 옷을 정리하시는 중인가보다. 옷가지들이 여러 뭉태기로 잘 싸여있다. 그 중에 옷가지 하나가 아버지 침대에 걸쳐져있다.
아버지 옷에 코를 대고 아버지 냄새를 맡으려하니 엄마냄새가 가득하다. 엄마도 매일 이 옷에다가 코를 묻고 아버지 냄새를 맡고 있었나보다. ‘그래…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더 크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내 슬픔만 슬픔이고 엄마의 슬픔을 외면한 난 뭐하는 딸인가. 아버지, 엄마가 아버지가 너무 그리우신가봐요. 그것도 몰라준 이 바보가 이제서야 그걸 아네요. 아휴, 아버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버지 방에 옷가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옷가지를 볼 때마다 왜 이리도 가슴이 저리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슬픔을 알면서도 난 잠깐 방관하는 중이다. 왜냐하면 그냥 울고 싶을 때는 우는 것이다. 우는 것을 참으라고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고통인 것이다. 이렇게 매일같이 슬피 울면서 눈물을 쏟다보면 언젠가 눈물이 바닥이 나겠지. 그때까지 기다리자.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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