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때 이야기

2006-09-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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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8.15’니 ‘신탁통치’니 하는 낱말이 나오니 그 때 생각을 하게 된다.
1945년 12월말 동대문운동장에서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를 연 후 이어서 서울역까지 시가행진을 할 예정인데 선두에 나설 대형 태극기를 들기 위해 이대에서 8명이 나와 달라고 주최측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여덟 명이 나섰다. 나는 대형 태극기의 왼쪽 앞 모서리를 오른손으로 단단히 잡고 앞만 쳐다보며 걸어나갔다.
해방이 되고 광란의 무질서 속에서 처음으로 질서정연한 시위행진이 벌어졌으니 연도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박수를 치고 크게 소리 지르며 우리를 환영하였다. 취재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힐끔힐끔 보며 신나게 행진하고 있었는데 그만 예기치 못했던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 전날까지 남북이 합심하여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반탁’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던 북의 김일성이 밤사이에 ‘찬탁’으로 돌아서서 평양대회를 취소했을 뿐 아니라 남쪽에 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지령을 내려 서울에서 벌어지는 반탁운동 행렬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도록 명령했다지 않은가!
선두에 섰던 우리는 느닷없이 들려오는 총소리에 몹시 당황했으나 곧 미군 기마대가 달려와서 우왕좌왕하는 우리들을 뒷골목으로 몰아 넣어준 덕택에 별 탈 없었는데 후미에서 행진하던 학생들 중 여러 명이 근처 세브란스 병원에 실려갔었다. 그렇게 되어 시가행진은 엉망이 되었다. 다음날 신문에는 다른 사진은 없고 대형 태극기만 큼지막하게 실렸더라는 말을 들었다.
청진에서 온 한 여성이 그 날 선두에 서서 걸어가는 나를 보았다고, 그녀는 여대생의 대표적인 운동가쯤으로 착각했던지 아는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고 들었다. 신문에도 내 얼굴이 크게 찍혀 나갔다 하니 알아본 사람이 더러 있었겠지. 사진기자들이 행렬의 왼쪽에서 태극기를 찍는 바람에 내 얼굴은 덤으로 크게 나갔던 모양인데 기가 막혔다. 나는 사상가도 운동가도 아닌, 봉사로 나선 8명 중의 한 학생이 아니었던가?
몇달 후 기숙사에 처음 보는 사람이 면회를 왔다. 서울대 영문과 학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 후 “젊은 사람들이 좋은 모임을 시작하는데 미스 김이 꼭 가주셔야겠습니다” 했다. 어떤 좋은 모임인가 물어봤더니 “가보면 안다”는 대답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하필 나인가? 화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안고 죽음의 38선을 넘어와서 고생 고생하다가 이제 겨우 밥 먹을 걱정 없이 석고 데생에만 매달릴 수 있는 형편이 된 자신이 대견하기만 한데 딴 생각을 할 여지는 없었다.
나의 단호한 태도를 본 그는 여러 사람이 추천을 한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반탁시위를 할 때 선두에 서서 흐트러지지 않던 자세가 눈에 띄었고, 알아보니 해방 전 재학생인데 당시 전교생을 지휘하는 대대장이었다”고, 웃음이 나와서 그의 말을 막았다.
“나는 시골에서 올라왔는데 처음에 분대장이었어요. 그 때 본 사람은 분대장으로 기억하겠지요. 얼마 지나니까 과를 대표하는 소대장 자리에 세우고 그 다음에 중대장, 나중에는 전교생에게 구령을 거는 대대장이 된 것은 사실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방학이 왔어요. 집에 내려갔다 해방을 맞았으니 그 짧은 한 학기 동안 여러 번 바뀌었는데 저는 어려서부터 유행가를 많이 불러서 목청이 틔었거든요. 아마 ‘저 목소리면 연대대장을 시켜도 해낼 거다’ 그쯤 된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는 나를 건너다보며 웃었다. “지금 문교부 장학생이라면서요?” 꼬치꼬치 잘도 들춰냈구나…
“교무과에서 가보라 하여 잔뜩 긴장을 하고 갔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노트 서너권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받았어요. 다음 것은 학교에 통지가 갈 거라더니 여러 달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어요. 안 할 말을 한 것 같은데 문교부 장학금의 현주소입니다. 이름이 올라있는 건 사실입니다”
“모 재단의 후원으로 기숙사에 있다던데요” 이 사람들이 어쩌려고 이러는가, 아무래도 한번 가서 나는 안 된다고 확실히 말해줘야겠다. 할 수 없이 따라나섰다.
넓은 방안에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나가더니 중앙에 선 사람에게 몇 마디 말을 하고 누런 갱지에 찍은 두툼한 서류를 들고 와서 건네주었다. 무심코 몇 장 넘기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녀국장 김순련’ 이게 웬일인가!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섰다. “제 이름이 여기 적혀 있어서 질문합니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제 이름을 여기 올렸습니까? 본인이 모르는 일이니 제 이름을 빼주세요!” 모든 얼굴들이 일제히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앞만 보며 유유히 그 곳을 떠났다. 역사에 남을 여성정치인 한번 돼보는 건데 그랬나? 쯧쯧…

김순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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