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된장녀 유감

2006-09-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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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유감

최근 된장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스타벅스 커피. 한국에서 스타벅스 커피는 새로운 대중문화와 소비취향의 심벌로 떠올랐다.

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정말이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 온라인상에서 출발한 이름도 기이한 ‘된장녀’라는 단어가 오프라인까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이름 걸고 칼럼 좀 쓴다는 박식한 이들까지 이 된장녀 논쟁에 가세했다.


도대체 어원에 대해서조차도 의견이 분분한 이 해괴한 단어는 이미 눈치 빠른 이들은 짐작했겠지만 부정적인 시선으로 가득 찬 특정 스타일의 여성을 지칭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 남자 대학생, 거기에 복학생이라는 또 다른 꼬리표를 지닌 한 남학생이 불만에 가득 차 이 된장녀 논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엔 특정 상표 도넛(아마 던킨 도넛이 아닐까 싶다)을 먹고, 명품으로 휘감고, 커피는 스타벅스만 마시고, 점심은 복학생들 ‘등을 쳐’ 비싼 레스토랑 밥을 갈취하는 ‘못된 여성’으로 묘사 돼 있다. 여기에 특정 상표의 손바닥만한 핸드백을 메고 전공서적 몇 권만을 손에 들고 다니는 ‘머리까지 빈’ 여학생이라는 덧붙임도 있다. 이 복학생의 글은 인터넷 물결을 타자마자 된장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동조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여기서 된장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데에는 일본인이 한국사람을 비하하는 말을 끌어다 쓴 것이라는 둥, 특정 비슷한 발음의 욕이 된장으로 ‘진화’된 것이라는 둥 의견이 분분하다.

된장녀에 빗대 돈 없고 가난한 복학한 남학생을 빗댄 ‘고추장남’ 버전까지 나오고 있어 한국은 순식간에 이름만으로도 그로테스크 한 된장녀와 고추장남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러면서 이미 한국에서 런칭한 지 오래돼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는 스타벅스가 삽시간에 한국 젊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트렌디함의 심벌이 돼버리고 말았다. 대학 구내식당 점심 값에 맞먹는 비싼 커피로 대표되는 스타벅스는 이제 X세대와 Y세대를 지난 신인류들의 샤핑 취향을 대변하는 그 무엇이 돼버렸다.

그러면서 여론은 점심 값보다 비싼 커피가 말이 되냐, 명품이 다 무어란 말이냐를 외치며 된장녀들을 준엄하고 통렬하게 꾸짖고 있다.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감히 단언컨대 된장녀를 허영 덩어리로 몰아붙이는 이들은 8:2 가르마에 흰색 면양말을 신고, 편한 게 최고라며 헐렁한 양복을 즐겨 입는 남성들이라는 짐작을 떨쳐낼 수가 없다.

소비는 이제 철학이 돼버린 지 오래다. 한 인간이 무엇을 입고, 신고, 먹고, 마시고 하느냐 하는 문제는 21세기 이 지구에선 그 인간의 취향과 성격에다 심지어 세계관까지를 반영한다. 소비는 기회비용일 뿐이다. 속 든든한 백반정식보다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더 행복지수를 줄 수 있는 이들이라면 5,000원을 과감히 커피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라고 한들 그것은 그저 한 개인의 취향이며 돈 쓰는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10달러짜리 티셔츠를 10장 사는 게 좋은 이가 있는가 하면 이를 모았다 100달러짜리 티셔츠 한 장으로 한 계절을 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이 소비취향의 문제에 비판과 선악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옷 잘 입고 스타일리시한 여성을 ‘닭대가리’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말이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에르메스 벌킨 백을 사기 위해 장기매매까지 고려했다는 일본의 한 칼럼니스트의 극단적 발언까지는 동조하지 못하더라도 알렉산더 맥퀸의 해골 스카프를 사기 위해 점심 값을 절약하고 용돈을 쪼개는 것이 룸살롱에서 하룻밤 술값으로 1,000달러에 육박하는 돈을 지불하고 손님 접대니 사회활동이니 하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더 화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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