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9-02 (토)
크게 작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통곡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앞두고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다. 10월에 어떻게 이리 많은 비가 내릴까.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더 슬프게 적신다. 휴, 하늘도 슬픈가 보네… 장례식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걱정될 정도로 비가 내린다.
오빠를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아버지의 마지막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오빠도 비행기 타기 직전에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터라 충격은 덜하지만 아들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침착하게 아버지의 장례식 준비를 하고 있다. 오빠와 함께 아버지의 사진을 정리하면서 조그마한 가족 사진첩을 만들자고 했다. 엄마와 결혼해서 우리 삼남매를 낳고 중요한 가족 행사들의 사진을 정리해서 만들었다.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태어난 우리 삼남매가 자녀를 낳고 우리의 자녀들이 또 자녀를 낳고 이렇게 세대는 이어지는가 보다.
하루종일 내린 비가 장례식 두 시간 전에 그쳤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우선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러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화장을 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어색하다. ‘아빠, 마음에 드세요? 전 아빠 얼굴이 아닌 것 같은데 아빠도 그렇죠?’ 우리 삼남매는 화장을 고쳐달라고 사람을 불렀다. 인공호흡기를 계속해서 끼고 있던 입이 너무 두드러져 보여서 약간의 수정을 부탁했다. ‘아빠, 훨씬 낫죠? 이제 좀 아빠 모습 같아요. 한 시간 후면 아빠의 장례식을 할 꺼예요. 아버지 옆에 엄마하고 우리 삼남매하고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주들까지 함께 있을 꺼예요.’
하루종일 내린 빗길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슬픔을 나누고자 장례식장을 찾아주셨다. 이런 엄숙하고도 무거운 분위기를 알 리 없는 우리 승욱인 그저 엄마아빠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가 보다. 연신 싱글벙글이다.
장례예배가 끝이 나고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한 사람씩 앞으로 걸어나오신다. 우리 가족보다도 더 슬피 우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중에 아버지 친구 분의 작별인사가 우릴 더 울게 했다. “길아, 내가 왔다. 눈 좀 떠 본나… 와 거기 누워 있노 임마야. 내가 왔다카이. 친구야, 친구야… 잘 가래이. 내 친구, 잘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를 뜨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분의 애타는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장례식장은 정말 온통 눈물바다이다.
하관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시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 속에 아버지의 하관예배가 진행이 되었다. 예배를 마친 후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분들의 순서가 모두 끝나고 관 뚜껑을 닫을 시간이 왔다. 목사님이 이젠 다시 이 관을 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관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 아버지…’
승욱이가 눈을 못 본다고 했을 때도 귀마저 듣지 못한다 했을 때도 이리 통곡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고 통곡하는 것이다. 언제나 눈물을 가슴으로 삭이며 살았던 내가 아버지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고 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 저는 불효자입니다. 아버지 가슴만 아프게 한 전 나쁜 딸입니다. 아. 아버지… 저 때문에 아버지 편하게 여생을 마감하지도 못하시고 저 때문에 가슴만 끓이다가 가시게 한 전 못된 딸입니다.” 아버지의 밀랍처럼 차디찬 손을 붙잡고 놓지를 못하고 있다. 쿵… 철커덩… 관 뚜껑이 닫혔다.
터진 눈물보가 도저히 멈추질 않는다. 바람 부는 언덕 위 아버지 무덤 앞에 모두 서 있다. 간단히 하관예배를 마치고 아버지 관 위에 장미꽃을 올려놓았다. 오빠가 우리 가족의 손을 잡고 동그랗게 서서 함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기도를 마치고 아버지의 관이 들어갈 자리를 보니 물이 3분의1 정도가 차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아버지 관이 들어갈 자리에 물이?’ 그 순간 마지막 아버지와의 대화가 번뜩인다.
“민아야. 저 산등성이에 물이 얼마나 차 있노?” 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가득 차 있어요.” 라고 대답했었다. 그때 아버진 “아니 3분의1 정도 차 있네…” 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럼 아버진 이 모습을 보고 계셨던 걸까? 난 너무 놀라서 ‘아버지…’
믿지 않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분명 아버지는 마지막 나와의 대화 속에 영안의 눈으로 당신의 장례식의 모습을 나에게 미리 말씀해 주셨던 거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 바로 천국의 소망이다. 분명 아버지를 잃고 깊은 슬픔으로 인해 하나님을 부인하고 실의와 좌절에 싸여 있을 나에게 확실한 것을 남겨주시고 가셨다.
‘아버지… 이제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우리도 아버지 가신 곳으로 갈께요’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