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8-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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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 (하)

담임 목사님이신 고태형 목사님과 최은석 목사님 그리고 몇 분의 성도님들이 우리 가족과 함께 아버지 주위에 섰다. 목사님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셨다. 임종예배를 보기 위해 모인 것을 알려 드리려고 그런 것이다. 목사님은 성경말씀 디모데후서 4장7절의 “내가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예배를 집도해 주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중환자실 아버지 양옆 두 자리가 비어 있다. 찬송을 함께 부르고 기도를 하는데도 옆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간간이 간호사가 다가와서 아버지를 지켜볼 뿐이다. 함께 모인 성도님들이나 목사님들이나 우리 가족은 함께 슬퍼하며 위로를 했다. 그것을 아버지가 알고 계신지… 예배가 끝나고 담당의사에게 모든 예배와 아버지와의 인사가 끝이 났다고 말을 했다. 의사는 주사를 준비해 오겠다고 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로 내가 너무 괴로워하니 가까이 있던 한국 의사가 나를 조용히 부른다.
한국 의사는 “무엇으로 내가 집사님을 위로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며칠 전 아버님과의 대화 중에 있던 것을 말해 드릴 게요. 집사님 아버님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죽는 주사가 있으면 놔달라고 말하더군요. 근데 제가 그랬죠,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버님께서 빨리 천국으로 가고 싶다고 그랬어요. 오늘 집사님이 결정하신 것 제가 아버님 아들이어도 그렇게 결정했을 거예요. 제가 오늘밤까지 이 곳 중환자실에 있을 겁니다. 무엇이든 도울 일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울지 마세요. 앞으로 또 할 일이 남아 있잖아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에게 놓아드릴 주사가 왔다고 잠깐 중환자실에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주사를 맞으신 후 평안을 찾으시는 것 같다. 숨소리도 작아지고 다리도 움직이지 않으시고 똑바로 누운 채로 엄마와 언니와 내가 불러드리는 찬송을 듣고 계신 것 같다.
…내 영혼에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심장의 박동수도 작아지고 아버지의 숨소리가 점점 작아지신다. 심장박동 계기판의 곡선도 서서히 일직선이 되어가고…
‘아버지.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눈물도 어두움도 그리고 그 어떤 장애도 없는 곳으로 가고 계시나요? 아버지, 천국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아버지를 맞이하고 있나요? 그 곳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세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기도해 주세요. 저희도 이 땅에 있는 동안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갈게요. 아빠.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너무 그리울 것 같아요. 아빠. 편히 가세요. 천국에서 만나요…’
심장박동 계기판이 일직선으로 확실히 그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이곳 저곳을 만지니 벌써 온몸이 싸늘하다. 심장에 손을 갖다 올려놓으니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 있다. ‘참 따뜻하다. 이 온기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 따뜻한 사랑의 심장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간호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인공호흡기며 아버지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기구를 하나둘씩 빼면서 엄마와 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괜찮니? 너희 아버지는 참 착한 환자였어. 아파도 언제나 내가 다가가면 미소를 지어주고 뭔가를 말하고 싶어했지.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어. 마지막까지 나를 이렇게 도와주고 가시네. 너무 슬퍼하지마 너희 크리스천이지? 또 만날 것을 믿지? 힘내.”
곧이어 한국 의사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간호사에게 듣고 달려왔다. 장례식까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었다. 참, 모든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위해 이렇게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병원에 모셔두고 우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학교 갔다가 삼촌 손에서 나를 기다린 승욱이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어쩐지도 모른 채 나를 만난 기쁨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괴성을 지르고 있다.
“욱아, 오늘 할아버지 천국으로 가셨어. 아니? 이제 욱이 학교 갔다 오면 욱아~ 학교 잘 다녀왔나! 뭐 배우고 왔노~ 할아부지에게 말 한번 해본나. 원투 뜨리 배웠나, 에이비씨 배웠나 어데 말 한번 했본나… 이런 말도 못 듣겠다 그지? 할아버지 너무 보고 싶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여기저기에 전화로 알려드렸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모두 함께 슬퍼한다. 그래, 너무 슬프다. 아무리 크리스천이지만 슬픈 건 슬픈 것이다. 남은 일들을 어찌 해야하는지 그리고 오빠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지도 모두 걱정이다. 휴…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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