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술이 가득한 ‘발틱해의 꽃’

2006-08-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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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멋쟁이 여학생들이 노점상하는
중세기 모습의 도시

세상 정말 달라졌네

1991년 고르바초프 대통령 시절 소련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재빨리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나라가 에스토니아다. 그리고는 EU(유럽연합)와 NATO에 가입하는 대담함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와 같은 행동은 에스토니아가 얼마나 러시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에스토니아는 핀란드 바로 건너편에 있는 인구 140만의 작은 국가지만 스위스나 덴마크, 네덜란드보다 면적이 넓은 나라다. 이른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틱의 소형제”로 불리는 파란만장의 역사를 지닌 국가다. 그리고 핀란드처럼 역사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 비극을 당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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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건물에 어울리는 중세기 복장으로 호객을 하는 여학생들.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을 든 죄(?)로 소련이 승리하자 국민의 10분의1이 시베리아로 유형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요즘에는 거꾸로 당시 유배작업을 지휘한 러시아인들이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고 시베리아에서 숨져간 에스토니아인들을 영웅으로 받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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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뒷골목 노점상에서 관광안내 책자를 팔고 있는 아가씨. 밝은 표정에 영어가 유창하고 손님에게 매우 친절하다. 탈린 올드타운에서 행상을 하는 아가씨들은 대부분 여학생들로 자신의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케이스들이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핀란드의 헬싱키와 마주보고 있다. 원래 에스토니아의 원주민은 핀란드 사람들이었고 언어도 핀란드어와 비슷하다. 이 두 나라는 핏줄이 같아 핀란드 사람들은 주말에 물가 싼 낭만적인 도시 탈린에 몰려와 돈 쓰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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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탈린 올드타운.

탈린은 발틱해 연안국들 중 중세기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고색 찬란한 도시(사진)다. 놀라운 것은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영어 배우기 붐이 일어 학생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거리마다 행상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대부분 아르바이트하는 예쁜 여학생들이고 남자 행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자들이 ‘맹렬 여성’ 기질을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너도나도 돈벌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분위기다. “돈 벌어서 어디에 쓰느냐”고 여학생에게 물었더니 “좋은 셀룰러폰과 옷을 사고 학비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거침없이 대답한다. 행상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눈치다. 탈린의 여성들은 매우 예술적이다. 올드타운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은 중세기 복장을 하고 손님을 맞는다. 수녀 복장을 했는데 알고 보니 책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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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복장으로 거리에서 책을 팔고있는 여대생. 예술적이다.


사람팔자 정말 알 수 없다는 말은 요즘 에스토니아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 러시아인들이 에스토니아인들을 호령해 왔으나 지금은 에스토니아인들이 주요직에 앉아 러시아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세상이다. 또 엊그제까지도 학교에서 러시아가 국어이던 것이 지금은 에스토니아어가 국어이고 러시아어는 영어, 독일어와 함께 제2 외국어로 격하되었다. 더구나 에스토니아어를 모르면 시민권을 주지 않아 이 곳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뒤늦게 에스토니아를 공부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공산당 시절 소련은 대대적으로 러시아 이민을 실시해 현 에스토니아 인구의 26%가 러시아인이며 어떤 공업도시에서는 러시아인이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지난 800년 동안 덴마크, 독일,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 나치, 소련의 지배를 번갈아 받아오다 마침내 주권국가로 독립한 에스토니아의 감격은 탈린의 거리에 넘쳐 있다. 합창으로 독립운동을 폈을 정도로 에스토니아인들의 음악 사랑은 대단하며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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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와 주택, 교회건물등이 잘 어우러진 뒷골목 풍경.

이 철<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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