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칼럼 원수의 사랑

2006-07-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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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장에서 죽어라 일만 하던 늙은 말이 있었다. 농부가 어느 날 들에서 돌아와 보니 늙은 말이 없어져 버렸다. 농부는 온 동네를 찾다가 혹시 사용하지 않는 깊은 우물에 빠진 것은 아닐까 싶어 우물을 들여다보았는데 정말 거기에 그 말의 빼빼한 등이 보였다. 말의 이름을 부르자 말이 애처롭게 울었다.
“아마도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야. 그렇지 않아도 이제는 너무 늙어서 쓸모가 없어 보였고 우물이 깊었기 때문에 말을 꺼내자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일해야 할텐데. 오래 전부터 이 우물도 메워 버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군. 말도 묻어 주고, 우물도 메워버려야지.”이런 생각을 하면서 농부는 마음을 굳게 먹고는 삽으로 흙을 파서 던지기 시작했다. 그 말이 오랫동안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 보이지 않는 곳에 떨어져서 흙을 빨리 파 던졌다. 말은 흙이 등위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몸을 흔들어 떨며 발로 그 흙을 밟았다. 농부는 자신과 자기의 행위를 저주하면서 열심히 우물을 매웠다. 한참 뒤 말은 흙 위로 올라와 우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우물에 빠져서 나올 수 없는 말을 주인이 묻어버리려고 했을 때 말은 더 큰 시련인 흙을 딛고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누구인가 힐책과 비난을 삽질해 던질 때가 있다고 본다. 상대가 모함으로나 아니면 좋은 의미에서 농부처럼 말을 죽이려고 열심히 퍼부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털어 버리고 꿋꿋하게 열심히 일어서는 것이다. 버티고 일어서서 불사신이 되어 상대 앞에 나타날 때에는 살아 올라온 말처럼 반가운 동료가 되어 다시는 버리지 않는 일꾼이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농부는 말이 미워서 죽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상황에 따라 상대를 위해서 정죄를 하거나 욕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농담으로 주고받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 한번만 더 옮겨지면 평생 원수가 되는 수도 많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좋은 의미에서 말한 것이 옮겨지면서 좋은 의미는 없어지고 나쁜 말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면전에 비난도 웃음으로 받아 드릴 수 있고 터놓고 지내는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사실 경상도 지방에서 아주 친한 친구에게만 쓰는 말 “문둥아”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린다면 굉장히 저주하는 말투인데도 그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는 가장 이해를 해주는 가까운 친구라는 뜻도 된다.
살아가면서 대인관계에서 오는 시련들이 마구 삽질해 죽이려 들지라도 툴툴 털어 버리고 당당하게 올라서 달려가는 그런 능숙한 멋쟁이 야생마가 되어 보았으면 한다. 대평원을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한 마리의 힘찬 야생마를 상상해 보라. 비평은 우리에게 살이 되고 남들의 비난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약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도 있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런 마각을 내 마음에 새긴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격언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질 것이다. 당하는 사람마다 복수의 칼을 빼들고 설친다면 세상에 살아날 가문이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지간에 다투고 싸우지 않은 집안이 없는 것이 씨족사회가 아닌가.
한 명의 원수를 갚고 나면 대를 이어 원수가 되지만 한 명의 원수를 용서하면 그 가족 모두가 내편이 되는 것인데. (213)999-4989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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