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그냥 살기 연습

2006-06-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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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개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사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돈의 액수에 목표를 정하고 그 만큼 모을 때까지는 사는 것 같지 않게 사는 사람도 있고, 명예를 얻기 위해 거짓말과 사람 버리기, 허세와 욕심 속에 갇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질 권력을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허락도 없이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 세월에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전력을 다해 ‘그때 그 모습’을 지탱해 보려는 처절한 싸움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최고이고, 무엇에든지 제일 많으며, 무엇에든지 제일 높아야 하는 피곤한 삶의 모습도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고, 공중에 나는 참새를 보라.”는 말씀은 더 나은 나를 장식하기에 허둥대는 우리들에게는 옛말이고, 우리는 여전히 명품으로 장식된 삶을 위해 분주하고도 얕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비어 있으면 채워야 하고 그냥 있으면 가꾸어야 하는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 곤고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백이 있는 공간을 그대로 두고 견디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바쁜 마음속에 그냥 그대로 비어있음을 축복으로 받는 여유가 아쉽습니다. 채우고, 높이고, 쌓고, 짓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냥 사는 것도 해봄직한 삶의 연습입니다. 그냥 사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어둠으로 채우시는 이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여백이 있음으로 우리가 모르는 충만함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가장 거룩한 지성소는 늘 비어있어야 하고, 거룩함을 찾는 우리가 하늘을 보는 것은 그 곳이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텅 비어있는 충만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어 있어야 충만할 수 있는 깊은 삶과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이라는 우리말은 포기하고 수동적으로 사는 모습을 뜻하는 것 같지만, 또 다른 뜻에는 ‘놓아둔다’는 뜻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끌어당기지 않고, 하늘의 기운과 창조주의 섭리의 이끄심에 순복한다는 뜻 말입니다.
그냥 사시죠. 그리고 비워 두시죠. 무엇이든 제일 크고, 제일 높고, 제일 편하고, 제일 많은 분주함이 끝나고, 어느 날엔가 철이 들어 하늘이 보이면 그때 우리는 그냥 사는 비워둠의 지혜를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키가 커졌다가 늙어가며 지혜가 깊어가며 키가 작아지는 이유는 땅이 자꾸 들어 오라 해서, 땅이 당겨서 작아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당김은 그냥 살기를 연습한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하늘의 섭리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극복하고 피해야 할 목적으로 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은 ‘그냥 살기 연습’입니다. 갈수록 커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비어있는 거룩함을 찾는 순례이기도 합니다. 아직 무엇으로 채워질지 모르는 비어있음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즉 당기시는 뜻에, 우리의 삶을 그냥 놓아둘 수 있는 용기가 곧 신앙입니다. 그냥 사세요. 그게 잘 안되면 연습하시죠.

곽 철 환 목사
(윌셔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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