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9세기, 위대한 선교의 세기

2006-05-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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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레가 천국에 올라가 천사에게 “우리 감리교 신자는 몇 명이나 천국에 올라왔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천사는 “감리교 신자는 한 명도 없다”고 대답했다. 실망한 표정으로 “그럼 장로교 신자는 몇 명이나?”라고 물으니 역시 천사는 “장로교 신자도 한 명도 없다”고 대답했다. 신교에서 한 명도 천국에 오지 못했으니 그럼 구교쪽은 어떤가 궁금해서 “가톨릭 신자들은 그럼 몇 명이나 있습니까”라고 묻자 천사는 “가톨릭 신자도 한 명도 없고, 단지 이곳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들만이 들어온다”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늘 구원의 문제다. 누가 어떻게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가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다는 말이다. 물론 성경 말씀 가운데 그 해답이 다 적혀 있다곤 하지만 사람들은 좀더 구체적인 방법과 해답을 알기 원했다.
칼빈은 예정론(Predestination)을 믿었다. 그의 기독교 5대 강령 가운데 하나인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영혼과 멸망받을 영혼을 창세 전부터 이미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희생도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는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를 주장했다.
‘이미 선택되었다’는 예정의 믿음은 개신교 초기에 선교 및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반면 요한 웨슬레는 ‘보편구원론’를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멸망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고 믿었다.
근대 선교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는 월리엄 캐리가 이방인 선교를 주장하며 인도로 떠나려고 할 때 칼빈의 예정론을 믿고 있던 개신교 사람들은 그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기 원하신다면 우리의 도움 없이 얼마든지 하실 것이요”
캐리는 이런 비아냥거림에 아랑곳없이 ‘이방인 구원을 위한 크리스천들의 의무’라는 논문을 남기고 인도로 떠나 그 곳에서 40년동안 성경번역과 복음전파, 그리고 사회 변화를 위해 힘쓰다가 현지에서 숨졌다. 캐리의 이런 헌신적인 선교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영국에서 침례교 선교협회가 조직되었고, 도처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파송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영국 출신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대동강변에서 27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순교의 피를 뿌렸다.
캐리의 뒤를 이어 데이비스 리빙스턴은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남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고, 요한 베니아미누는 알래스카에서 복음을 전했다. 또한 데미안 신부는 하와이에서 문둥병 환자들을 보살피다 그곳에서 문둥병에 걸려 순교했다. 1860년에는 허드슨 테일러 부부가 중국 내륙 선교회를 세우고 중국과 아시아 선교에 헌신했다.
개신교 선교 운동은 19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으며 특히 미국에는 학생 선교 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in Mission)으로 확산되며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출신의 많은 젊은 엘리트들이 해외선교에 헌신했다.
선교학자들은 이러한 19세기 기독교 선교 운동을 가리켜 가장 위대한 선교의 세기(The Great Century of Mission)라고 규정했ek.

■19세기의 주요 사건

▶ 1840 리빙스턴 아프리카 선교
▶ 1851 영국 만국박람회
▶ 1853 크림 전쟁
▶ 1859 다윈 진화론 발표
▶ 1860 허드슨 테일러
중국 내지 선교회 설립
▶ 1861 링컨 대통령 취임
▶ 1863 노예해방령 발표
▶ 1866 토마스 선교사 한국순교
▶ 1869 제1차 바티칸공회
▶ 1871 시카고 대화재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
<예찬 출판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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