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지현의 와인 이야기 떠나기, 머스캇과 함께

2006-05-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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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떠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을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방랑은 사람의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홀로 떠난다는 것은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경험이 될 것입니다. 홀로 있을 때에 비로소 스스로와의 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영성 같은 것이 깨어나게 됩니다. 스스로와의 대화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작업입니다. 홀로 떠난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끊임없이 외부의 세계를 향해서만 내뿜는 에너지를 잠시 거두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상황입니다. 쓸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것은 고독의 외형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견디기에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리 속에 속하고 싶어합니다.
정신적으로의 고독은 사람을 성장시켜 줍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 즉,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즐기거나 마당을 쓸고 꽃을 가꾸는 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상의 평범한 일 그 자체를 말한다. 마음의 평화는 오직 고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고독해지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고 자기 자신과의 만남과 대화를 즐겨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고독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위대했던 현각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사막에서, 숲에서 홀로 있었고 그리고 고독했던 사람들입니다.
혼자 떠날 때, 머스캇은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도 변함없이 해는 떨어지고 적막한 공간은 찾아옵니다. 달콤한 머스캇의 향기는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로움을 뚫고 촛불처럼 번져 나갑니다. 오렌지와 복숭아의 황홀한 향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긴장되고 피곤했던 하루를 쉽게 잊게 하여 줍니다.
머스캇은 디저트 와인입니다. 식사가 끝난 후, 케이크나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먹으면서 마시기도 하지만 아무 때나 꺼내놓고 마셔도 기분 좋은 와인입니다. 머스캇은 매우 달콤하며 알콜의 도수가 높고 아름다운 향을 가졌습니다. 오렌지 꽃과 잘 익은 복숭아의 향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 밖에도 자두를 삶은 듯한 맛, 꿀, 무화과, 넥타, 흙, 바닐라, 건포도 등의 향을 가지고 있으며 입안에서의 느낌이 명랑하고 마시는 즉시 즐거움을 주는 와인입니다. 알콜의 도수가 너무 높은 것은 단 맛과 하나가 될 때 뜨거운 기분을 많이 주어 자칫 천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도수가 낮은 것이 오래 즐기기에 좋습니다.
봄의 정원에 가만하게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인생은 여행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 여행을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일 겁니다.
사랑했던 괴로움도, 즐거웠던 추억도, 고통도 이젠 모두 잊어버리기에 좋은 시절입니다. 무엇인가를 늘 그리워하게 하는 봄은, 쓸쓸하지만 목적지 없는 바람처럼 떠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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