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 죽고 싶다

2006-05-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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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장창 창창, 유리가 부서지고, 컵이 깨져 파편이 나르고, 단추는 두드득 떨어져서 이곳 저곳으로 튀어 다니며, 물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완전히 개판을 치고 있는 기철이는 ‘날 죽여주쇼’라는 기세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고 이를 제압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것은 때리지 않고 그를 누그러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PK에게 기철이가 크게 오해를 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형편들이 되지 못하는 형제들에겐 봉사자의 약간의 실수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사건이었다.
어릴 때부터 기철이는 내가 잘 아는 녀석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유명한 깡패 출신으로 그 계통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아주 유명한 싸움꾼이셨다. 그래서 그 피를 물려받아 그런지 형은 아주 뛰어난 싸움꾼이었고, 기철이는 형과 함께 ‘한 어깨’ 하는 녀석이었는데 약으로 찌들어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옛날에는 기철이가 그렇게 마음이 좁은 녀석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참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마약중독자이고, 돈 없고, 뒷 빽 없다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듯 싶었다. 나오는 폼이 이판 사판 사생결단을 내리려는 듯하였다.
“야~ PK 나와. 네가 목사냐? 야, 이 새끼야. XXXXX 그러고도 네가 목사냐?” 이렇게 막말을 하자 참고 있던 KJD가 “어떻게 막말을 하고 그래요. 목사님에게 너무하지 않아요?”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뭐라고? 넌 뭐야, 이 쌍XX아~ 이게“ 하며 들고 있던 컵을 KJD에게 집어던진 것이었다. 다행히 컵은 빗나가 KJD가 맞지는 않았지만 유리창이 부서지고, 여기저기 깨어지는 난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빨리 기철이를 강제적으로 끌고 밖으로 나갔다. 기철이를 때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기철이의 눈빛은 제발 때려서 자기를 죽여달라는 강한 눈빛이었다. 그것은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지난날 내가 자살할 때의 눈빛과도 같았다. 기철이는 PK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고, 비참해진 자신의 모습이 신물나게 끔찍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기철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로부터라도 신나게 아주 늘씬하게 맞고 나면 후련해질 것 같은 그 마음을 말이다… “기철아, 너 형 알지?” 밖에서 나는 기철이에게 목사라는 말을 쓰지 않고 형이라는 말을 썼다. “알아요. 형, 나 그 새끼 죽이고, 나도 죽어 형, 나 말리지마…” “야~ 너 형을 알아보니 다행이구나. 그렇다면 너 형도 칠래?” “형~ 난 형에게 감정 없어요. 난 저 PK XX 오늘 끝장내기만 하면 돼, 나 말리지마”
“야. PK를 때리는 것은 나를 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너 오늘 PK에게 손끝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너와 내 관계는 오늘로써 끝장인 줄 알아라. 네가 죽고 싶던, 말던, 그것은 너의 일이야. 여기랑 상관 짓지 말아라. 정말 너가 하루라도 나를 형으로 생각했다면 여기서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마라. 의리 따지는 너의 옛 모습이 그립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죽더라도 값진 일에 목숨 걸어라. 여긴 네가 목숨 걸 자리가 아니야”
“형~ 아이 씨팔”하며 선교회 담벼락을 몇 번이나 주먹으로 쳐댔다. 주먹에선 피가 흘렀다. 그러나 기철이는 계속해서 담벼락을 쳤다. 나는 그냥 기철이를 나두었다. 밖에서 불켜진 선교회 안쪽을 쳐다보니 불안한 듯 선교회 사람들이 창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유리를 치우는 것이 보였고, 창문에서 유리를 떼어내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기철이 손에서 흐르는 피를 모르는 척 보지 않은 척하였다. 그리고는 어깨를 감싸 안고 “죽고 싶냐?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너도 알지? 그러나 난 지금 이렇게 살고 있고, 이제 살아야 할 가치를 느끼고 있다. 난 하나님을 만났다. 너도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길 바란다. 그전까지는 죽지 마라”
기철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기철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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