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운타운 로이스 레스토랑

2006-05-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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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 로이스 레스토랑

LA다운타운 로이스 레스토랑의 내부. 평일 저녁인데도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다운타운 로이스 레스토랑

매스터 셰프 로이 야마구치.

하와이언 퓨전“원조가 여기 있었네”

‘퓨전 레스토랑’ 하면 이제는 조금 짜증이 나려 하던 참이었다. 곳곳에 많고 많은게 퓨전 식당이고, 무엇이든 적당히 섞어서 이름 모를 음식을 만들어놓고는
퓨전이라고 하는 일도 적지 않은 터라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맛은 좀 덜해도 소속이 분명하고 솔직담백, 토속투박한 음식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중인데… 그런 어느 날 ‘진짜 퓨전 레스토랑’을 발견한 기쁨이란, 돌밭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찾아냈다 해도 크게 과장한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일본·중국 조리법 조화
‘요리 아버지’야마구치 체인점


LA 다운타운, 8가와 피게로아 코너의 로이스(Roy’s) 레스토랑. 정말 정말 맛있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하는 친지 가족과 함께 처음 찾았을 때 사실은 별 기대가 없었다. 저녁 6시가 넘은 시각, 썰렁해야할 다운타운의 식당이 그처럼 왁자지껄 붐빈다는게 좀 이상하긴 했어도 요즘 젊은애들이 다운타운에 좀 풀렸나보다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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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의 클래식 메뉴인 블래큰 아히.

그런데 애피타이저로부터 하나 둘씩 나오는 음식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알로하 롤(Auntie Lie’s Aloha Roll)과 할레아칼라의 일출(Sunrise at Haleakala)라는 이름의 스시 롤이 나왔을 때는 생선을 거의 먹지 않는 내가 마구 집어다 먹기 시작했고, 이어 와사비와 참기름이 약간 섞인 듯한 소스에 버무린 아히 ‘포케티니’(Yellow Fin Ahi Poketini with Avocado)가 칵테일 잔에 예쁘게 담아져 나왔을 때는 날생선을 서슴없이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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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살살 녹는 초컬릿 수플레.

애피타이저가 이쯤 되니 메인 요리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튀긴 바나나와 함께 서브되는 타이 피넛소스 생선요리(Lemongrass Crusted Shutome), 랍스터 버터소스를 곁들인 마카다미아 넛 마히마히(Roy’s Classic Macadamia Nut Mahimahi), 리조토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스캘럽(Caramelized U-10 Sea Scallop), 상해식 볶음국수가 함께 나오는 왕새우요리(Togarashi Spiced Black Tiger Shrimp), 크림시금치와 감자 그라텡이 따로 나오는 프라임 립, 그리고 초콜릿 수플레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의 맛이 거의 오열할 만큼 기막혔던 것이다.
이름들을 보면서 눈치 챘겠지만 로이스는 하와이언 퓨전 레스토랑이다. 처음에 ‘진짜 퓨전식당’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원조 퓨전식당”이라 하는 표현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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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다미아 넛 크러스티드 마히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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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 포케티니.


애피타이저 스시 롤부터 환상적
살살 녹는 블래큰 아히 등 ‘탄성’

일본계 셰프 로이 야마구치가 1988년 하와이 호놀룰루에 첫 로이스 식당을 오픈했을 때 요식업계는 난리도 아니었다. 유러피언 쿠킹에 아시아의 맛과 태평양의 재료를 결합시켜 퓨전이라는 요리를 처음 선보인 야마구치는 ‘동서양음식을 현대적으로 결합한 요리의 아버지’로 미식가들과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뉴욕타임스는 야마구치를 ‘태평양의 볼프강 퍽’이라 했고, 사람들은 로이스 레스토랑을 ‘하와이의 스파고’라고 불렸다.
야마구치는 일본 토쿄 태생. 마우이에 살고 있는 조부모 댁을 방문할 때마다 금방 잡아올린 태평양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며 독특한 미각을 개발해온 그는 일찍이 요리에 뜻을 정하고 뉴욕의 CIA요리학교를 19세에 졸업하였다. 이후 LA의 르 세린(Le Serene), 마이클스(Michael) 등 고급식당에서 ‘매스터 셰프’가 되기 위한 강훈련을 거친 그는 1984년에 385 North라는 식당을 오픈했다. 라시에네가 길 노스 385번지에 자리잡은 이 식당은 오래전 나도 가본 기억이 나는, 아주 컨템포하고 업스케일하며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식당이었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자신의 요리세계가 뿌리를 내리고있는 하와이로 내려간다. 88년 로이스를 오픈한 이 후의 스토리는 위에 쓴 그대로. 퓨전요리의 역사를 그 자신이 써내려가는 동안 로이스 식당은 현재 33개로 불어났다. 하와이 각 섬에 6개, 미 본토에 라스베가스, 피닉스, 애틀랜타, 시카고, 올랜도, 뉴욕, 필라델피아 등지에 24개, 일본에 2개, 괌에 1개가 있다. 남가주에는 약 1년전 문을 연 LA다운타운 외에도 뉴포트 비치, 우들랜드 힐스, 랜초 미라지, 라호야 등지에 로이스 레스토랑이 있다.
각 지역의 레스토랑에서는 로이스만의 공통된 메뉴들과 함께 현지 셰프들만의 독특한 메뉴가 함께 서브된다. 공통의 메뉴들은 프렌치, 이탤리언, 타이, 일본, 중국, 폴리네시안 요리법이 기막히게 조화된 야마구치의 클래식들인데 가장 인기있는 것으로 블래큰 아히(Blackened Ahi with soy-mustard sauce)와 사천식 돼지갈비(Szechuan baby-back pork ribs)가 꼽힌다.
음식 가격은 애피타이저가 9~23달러, 메인 디시 19~38달러 선. 와인 리스트도 알짜배기로, 셀렉션이 많지 않으면서도 웬만한 애호가들이 좋아할 와인들을 얄밉게도 잘 갖춰놓았다.
LA 다운타운 로이스 식당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800 S. Figueroa Street Los Angeles, CA 90017 (213)488-4994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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