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은 아래로 흘러 맑고

2006-04-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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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아침 일찍 첫째 여명이와 15리 정도 뛰고 걷습니다. 3년 전 여명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키가 훌쩍 자라버렸는데 몸에 균형이 잘 맞지 않는지 농구선수로 뛰는 걸 보면 금방 지치기 일수입니다. 뛰고 걸으면서 몸의 균형이 맞추어지길 바라고 뛰고 걸으면서 아이와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어서 좋더군요.
보살핌을 잘 받은 사람은 자기가 자란 만큼 다른 것들을 보살필 줄 알게 되고 잘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보살핌도 받게 되지요.
농부는 농사를 통해 자연세계의 인과응보라 하는 순환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보살핌의 법칙도 그 중 하나입니다. 유기농을 해 본 농부는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맛있는 거름을 준 식물과 맛없는 비료를 준 식물은 그 맛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퇴비에는 식물이 맛을 내기에 필요한 성분이 충분히 있는 반면 비료에는 식물에게 필요한 성문이 몇 가지밖에 없어서 종합적인 좋은 맛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잘 보살핀다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만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기에 충분한 것들을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뛰고 걷다보면 인공으로 만든 넓이 7m쯤 되는 개울(농수로)을 만나게 되는데 이 농수로는 얼마쯤의 간격으로 물이 떨어지게끔 보를 만들었는데 윗물은 물이 많고 무척 더러운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갈수록 물이 깨끗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물의 자기정화 과정은 ‘아래로 흐르기’이고 아래로 흐를수록 살아있는 좋은 물이 되는 것은 아래로 흐르면서 개울 아래 흙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개울 옆 풀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그리고 개울아래 모래흙을 굴리면서 자기의 찌꺼기들을 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윗물이 더러워도 물이 아래로 아래로 계속 흘러가면 깨끗해집니다.
상승욕구가 강해 하나님의 형상이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사는 사람이 깨끗해지려면 어느 자리에 있든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의 멍에를 져야 하겠지요.
‘평화의 동산’이라 이름 지어진 두레마을 동물우리 안의 각종 동물들은 그 울타리 안에 한해서 자유를 갖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울타리 없는 동물농장이면 더 좋겠으나 여러 이유로 울타리를 칠 수밖에 없었는데 작은 병아리들은 자유롭게 울타리를 넘나듭니다. 울타리가 작은 병아리를 가두지 못하는 것은 울타리를 형성하는 철사망이 넓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병아리가 작기 때문입니다.
‘ㅈ’ 언어는 모든 자음 중 유일하게 땅 아래로 퍼져나가는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다’ ‘잠자다’ ‘줄어들다’ ‘졸아들다’ 등등. ‘ㅈ’자가 강하게 표현된 ‘ㅊ’언어도 마찬가지로 ‘ㅈ’언어의 의미를 따릅니다. ‘착하다’는 말은 ‘작다’는 말의 의미와 같은 것이지요. ‘ㅈ’언어는 뿌리를 닮았습니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식물의 부위 중 생명력이 가장 강한 부위는 바로 뿌리입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 작은 자로 산다는 것, 아래를 지향하는 삶을 산다는 것, 사회적 지위가 가장 낮다고 생각하는 농부로 산다는 것은 오히려 그래서 생명력이 가장 강하게 거침이 별로 없어서 자유롭고 맑은 물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아래를 향해 뛰고 걷다가 물이 점점 맑아지는 걸 보니 왠지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울타리의 작은 틈 사이로 거침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병아리들을 바라보며 앉아서 쉬다가 울타리 밖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염소와 양 거위 칠면조 등을 보고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어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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