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4-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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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주권 인터뷰 날 (하)


나에 관한 인터뷰가 모두 끝이 나고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라고 한 순간 갑자기 풀렸던 긴장이 다시 살아난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려 했더니 이 집사님이 벌써 일어나 나가시고 계시다. ‘승욱인 지금 뭘 할까. 여기 이 좁은 공간에 데리고 들어오면 난리가 날텐데…(승욱인 좁은 공간을 제일 싫어한다) 제발 얌전히 있어줘야 하는데…’
잠시 후 이 집사님이 승욱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들어온다. 큰아이는 마냥 신기한 듯 두리번두리번 도대체 여기서 엄마와 동생과 자신이 뭘 하는지 아직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 큰아이는 나를 보는 순간 “엄마! 승욱이 자! 방금 잠들었어. 이것 봐!” 난 너무 놀라서 “응~? 자? 승욱이가 잠들었어?” ‘아이고 주여 감사합니다.’ 차려 자세를 하고 너무나 평안히 잠들어 있는 승욱이를 보고 다시 긴장이 풀린다.
인터뷰를 담당하는 사람은 아이가 너무 오래 기다려 지쳐서 잠이 든 줄 안다. 연신 잠든 승욱이를 보고 귀엽다고 하고 승혁이를 보곤 오늘 학교도 못 가고 이 곳에 왔겠다고 했다. 아이들에 관한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신체검사 한 것과 여권과 여러 가지 서류를 확인한 후 그 자리에서 바로 임시 영주권 도장을 찍어 주었다. 승욱이가 깰까봐 담당자는 소리에 조심하는 눈치다.
4년8개월을 기다린 영주권이 불과 몇십분만에 빨간 도장을 찍어줌으로 끝이 났다. 이 도장하나 받기가 왜 이리 힘이 들고 왜 이리 까다로운가. 영주권 카드는 3주 안에 집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여러 가지 챙겨온 서류 한 뭉치를 들고 좁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친정엄마가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곤 기뻐서 뛰어오신다. 아까 아이들을 데리러 이 집사님이 잠깐 나왔을 때 엄마에게 내가 영주권을 받았다고 미리 들은 모양이다.
엄마가 괜히 기쁜 나머지 울먹이신다.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딴 것도 아니고, 하버드 대학교 가서 졸업한 것도 아닌데 웬 눈물? 그런데 사실 나도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중이다. 어젯밤 ‘영주권이 뭐가 그리 대수냐?’라고 했지만 나와 그리고 미국에 온 이민자들에게 정말 필수코스인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영주권을 쉽게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주권의 관문을 그리 쉽지만은 그리 짧은 시간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긴 기다림… 그걸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탄내가 풀풀 나는 가슴을…
엄마는 승욱이가 너무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부르기 바로 전에 깊은 잠이 들었다고 했다. 마치 마술에 걸린 양 신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까불던 애가 유모차에 앉히니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는 것이다. 허 참, 설명할 수 없는 일일세…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저 영주권 받았어요~” 아버지는 “아이고 잘 했데이. 아이고 장하데이. 아이고 이젠 아버지 걱정 하나도 없다” 어라? 아버지도 울먹이시네? 다들 왜 이러셔~
소식을 기다리는 여러 곳에 전화를 다 드리고 이 집사님과 점심식사 후에 집사님을 주차장까지 잠시 배웅해 드리면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한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작은 어깨의 이 집사님에게 난 안기면서 “너무 감사해요. 그동안 4년8개월 동안 일 처리 잘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나를 꽉 안아주시는 이 집사님이 “민아 집사, 사실 승욱이 할아버지도 저리 편찮으신데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긴장했는줄 알아? 오늘 영주권은 내가 일 처리를 잘해서 받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거야. 믿지? 인터뷰 들어가서 지갑 안에 낀 신분증부터 모든 것에 우리가 어찌 했던 것은 없었어. 승욱이 서류상에도 시각장애랑 다 나와 있었는데 전혀 문제 삼지도 않았잖아. 나도 이런 건 처음이야. 하여간 앞으로 승욱이 더 잘 키워. 아버지 더 잘 모시고 알았지?” 참았던 눈물이 순간 주르륵 떨어진다. 언제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이 눈물 때문에 문제다.
오늘하루 정말 인간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영주권 인터뷰하는 동안 일어났다.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의 힘으로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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