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내 같은 남편, 남편 같은 아내 ‘행복 만들기’

2006-04-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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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한의대 동기 동갑나기 한의사 부부


참 다른 듯 많이도 닮았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남편의 말을 교수님 강의인양 경청하는 진지한 아내의 눈빛이, 말끝마다 묻어 나오는 서로의 대한 애정과 격려가, 아직도 대학 캠퍼스 커플 같은 ‘닭살스러운’ 풍경을 배경으로 그들은 남매인 듯 똑 닮았다.경희대 한의대 88학번 동기, 6년을 같은 교실에서 수험생처럼 동고동락, 6년을 줄기차게 쫓아다닌 최혁용(36) 원장의 ‘꾐’(?) 혹은 ‘지극 정성’에 감동해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는 주혜정(36) 원장. 어느새 결혼 12년 차에다 2남1녀를 둔 중고참 부부이지만 이제 겨우 LA생활 2년 차의 새내기 이민자이기도 하다. 평범한 듯, 특별해 보이는 이들 한의사 부부가 사는 법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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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남매 같은 동갑내기 부부 함소아 한의원 최혁용·주혜정 원장. ‘자연을 닮은 아이’라는 함소아 한의원의 슬로건처럼 이들은 자연 친화적인 진료와 약재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무대로 네트웍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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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전문 한의사래서가 아니라 최원장은 유독 아이들을 좋아한다. 덕분에 그가 진료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의사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옆집 오빠 같다.


‘함소아 한의원’최혁용·주혜정 원장

◇함소아 한의원이라는 신화

문자 그대로 신화다. 1999년 5월 한의대 선배 2명과 의기투합 서울 대치동에 함소아 한의원을 개원했을 때만 해도 최 원장은 그저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한의사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역시 불과 4년만에 한국과 미주에 마흔 곳이 넘는 네트웍을 형성한 한의원으로 초고속 성장 가도를 달리리라고는 짐작치 못했다. 그저 아이들을 진료하는 것이 좋아 바둑 돌 두듯 한돌, 한돌 두다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왔단다.
현재 함소아 한의원은 한국 내 40곳, 미국 내 3곳(LA, 로랜하이츠, 뉴욕), 중국내 1곳(상하이), 북한 약초 농장 등을 거느린 한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연내 시카고, 뉴저지, 부에나팍 등 미주 내 3곳을 더 신설할 예정이라고 하니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외양과 달리 설립자인 최 원장은 소탈하다 못해 천상 대학생 같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마주한 그를 보고 있노라면 무표정과 스피드(?) 진료가 트레이드마크인 한국 의료 현실을 무시(?)한 채 그는 아이들과 노는 것인지 진료하는 것인지를 분간하기 힘들만큼 진료 자체가 놀이처럼 보인다.
“한국에선 담당 한의사들이 직접 대기실까지 나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옵니다. 병원이라 그러면 지레 겁부터 먹는 아이들에게 함소아는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죠. 의사들이 하마가 그려진 노란 가운을 입고, 병원 내 놀이공간을 만든 것도, 쓰지 않은 증류한약을 만든 것도 모두 어린이 환자들의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덕분에 함소아는 한국에서 소비자 만족상, 한국서비스 경영진흥원상 등 웬만한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
“한의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게 최종 목표죠. 더욱이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양의를 공부한 의사들도 한의에 대해 관심이 많은 만큼 한의의 발전 가능성은 엄청나게 큽니다. 그리고 그 세계화 속도만큼 한의학을 대중화시키는데 노력할 겁니다”

 ◇이 부부가 사는 법

부부 한의사라 그러기에 주 원장 역시 초창기부터 함소아에 근무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그의 가장 오랜 경력은 한국내 정부기관인 한국한의학 연구소 연구원. “내성적인 성격 탓에 환자를 진료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즐거웠다”는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학구파에 ‘왕’ 모범생이었다.

“오전 9시가 수업이면 오전 8시부터 와서 교실에서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고학년이 돼서는 후배들 스터디 도와주고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집밖에 몰랐던 모범생”이라는 것이 최 원장의 전언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소심하다는 것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장부 같은 대범함이 주 원장의 본색(?)일지도 모르겠다.
주 원장은 최 원장과 결혼하고 시간 강사였던 최 원장 대신 가장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사학위까지 따고도 소아 전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최 원장의 고집은 성인과 소아를 다 진료해야 한다는 대학병원의 영입제안도 마다해 주 원장의 실질 가장노릇은 3년간 계속된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특별한 구박(?)도 없었다니 얼마나 ‘쿨’한 아내인가.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남편 커리어인데 남편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짤막한 답변만을 내 놓는다. 이런 아내 덕분에 이들의 부부싸움 역시 싱겁기 그지없다.
문제가 생기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하자고 보채는 쪽은 남편이고 오히려 아내는 묵묵부답. 그러니 자연 ‘속 터지는’ 쪽도 남편이다.
“뭐 어쩌겠어요. 타고난 성격인 걸요. 그래서 신혼 초엔 서로 다른 성격으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요즘은 얼굴 볼 틈도 없는 데다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웬만한 건 이젠 봐주고 넘어갑니다(웃음)” 최 원장의 체념 아닌 체념이다.
◇믿는 만큼 크는 아이들
부부 한의사, 그것도 소아 전문 한의사라 하니 이들 부부의 아이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부부에겐 3남매가 있다. 열 살된 어진이, 두 살 아래 현석, 막내 유나가 이제 여섯 살이다.
이제 육아의 부담에서 놓여날 수 있어 보이건만 이들 부부는 아이 하나가 더 있음 어떨까 하고 넷째를 계획중이란다.
“저희도 맞벌이였으니까 육아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죠. 그러나 아이들은 믿는 만큼 큰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키우는 것 같아도 결국 아이들이 알아서 크는 거죠. 이제 또 막둥이 낳으면 이젠 아이들이 다 키워주지 않을까 하는 배짱도 생기고요(웃음)” 아이들 건강문제에 있어선 최 원장이나 주 원장이나 남들이 보기엔 무관심 방치형이다. 고열로 의식을 잃거나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아이들이 스스로 병을 다스려 낫는 면역을 믿는 편이다. 그리고 다행히 3남매는 별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줬다.
새롭게 시작하는 미국생활 역시 쉽지만은 않지만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진료 시간 때문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늘었고, 여전히 한국으로 중국으로 출장이 잦긴 하지만 최 원장도 LA에 있을 땐 그래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덕분에 이들 부부는 물 설고 낯 설은 미국생활이 견딜만 하다고 귀띔한다.
한국 최대 한의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선 도저히 기업인의 딱딱한 냄새가 나질 않는
다. 그래서일까. 한의학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목적보다는 이들 부부가 이제 막 새로운 땅에서 알콩달콩 만들어갈 행복지도가 더 궁금해지려 한다.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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