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4-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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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주권 인터뷰 날(상)

지난밤 아자!를 외치며 잠을 청했건만 승욱이 녀석의 밤샘으로 역시나 밤을 꼴딱 새우고(새우잠으로 대충 때우고) 아침 일찍 서둘러 엄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인터뷰하는 장소로 향했다.
운전하며 가는 내내 참 많은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찼다. 미국에 온 첫날부터 오늘까지 모든 순간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그 많은 일속에 내 힘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네… 모든 것이 만남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온전한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만약 오늘 영주권 인터뷰가 잘못된다 할지라도 난 감사할 것이다.
밤샘을 하고도 전혀 끄떡없이 승욱인 어디 소풍을 가는 냥 신이 나다 못해 완전히 ‘업’ 상태이다. 인터뷰 장소 앞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난 큰아이의 손을 잡고 가고 엄마는 승욱이의 손을 잡고 가고 있다. 승욱이는 지팡이를 무기 삼아(승욱인 3세 때부터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다) 휘두르고 앞으로 전진~ 돌진~ 너무나 씩씩하고 당당하게 잘 걸어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뒤에서 힘없이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승욱인 좋겠다. 너가 무슨 걱정이 있고, 근심이 있겠니… 더러운 것 보지 않고, 시끄러운 소음 듣지 않고, 나쁜 말도 할 줄 모르고… 너가 무슨 고민이 있겠니.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주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너가 정말 때묻지 않고, 깨끗한 아이라는 걸 너를 볼 때마다 느껴…”
10시에 있는 인터뷰에는 변호사와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신 이집사님이 함께 들어가 주시기로 했다. 인터뷰 시간이 다가오자 변호사와 이집사님이 함께 오셨다.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은 승욱이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와서 눈이 충혈되었다 치더라도 이집사님은 얼굴이 왜이리 까치리하고, 눈이 저리 움푹 들어간 것인지… 우리가족 걱정으로 이른 새벽부터 잠에서 깨셔서 성경보고, 기도하고 오셨다고 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25년 가까이 일해왔지만 이번이 제일 긴장되고 걱정된다고 했다.
인터뷰 대기실에서 함께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온 순서부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먼저 들어가서 인터뷰에서 거절당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난 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옆에 앉은 우리 변호사와 이야기를 했다. 회사가 어쩌구, 제품이 어쩌구, 주저리주저리… 무표정의 우리 변호사 도대체 내 얘기를 듣는 것인지. 헉!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른다.
나하고 변호사 그리고, 통역을 맡을 이집사님만 먼저 들어오라고 했다. 애들은 조금 있다가 따로 부른다고 했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데 여태껏 태연하던 내가 떨고 있다. ‘민아, 너 떨고 있니? 응, 나 떨고 있나봐…’
좁은 방에 4명의 사람이 함께 앉았다. 진실만을 이야기할 것을 선서하고 복사를 하기 위해 각자의 신분증을 꺼내라고 했다. 나와 변호사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빼주었다. 그런데 통역으로 따라 들어오신 변호사 사무실의 이집사님의 신분증이 지갑에서 빠지질 않는다.
며칠 전에 백화점에서 세일하는 것을 하나 장만하시고 멋지게 신분증을 앞에 꽂아 두었는데 아직 가죽의 길이 들여지지 않은 상태여서 꽂은 그대로 빠지질 않는 것이다. 처음엔 어… 이게 왜 안 빠지지? 손가락을 집어넣어 가죽을 늘리고, 이리저리 돌리고, 좌우로 움직거리고, 지갑을 책상에 탁탁 쳐도 도대체가 빠질 생각을 하질 않는다. 급기야 옆에 앉은 변호사(아주 육중한 몸매의 소유자)가 신분증을 빼려고 거들고, 나도 거들고, 마지막으로 인터뷰 담당자도 거들고… 얼씨구나? 이게 웬일? 갑자기 그 자리에서 다들 폭소가 터졌다. 푸하하하하… 우키키키… 으하하… 아이고 세상에 신분증이 복사를 거부하네… 심각하고 무겁던 좁은 사무실의 분위기가 지갑에 낀 신분증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 전환이다. 5분간 실랑이를 벌이던 신분증은 결국 빠지질 않았고 지갑에 껴있는 채로 복사에 들어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도대체가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인지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러 온 것인지, 여러가지 질문을 했지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우리 변호사가 다 말을 한다. 인터뷰 들어오기 전 대기실에서 내가 옆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한 것을 토씨하나 틀리질 않고 그대로 답변을 해준다. 역시 25년 경력의 변호사라 틀리긴 틀리네. 너무 무표정으로 두꺼비처럼 앉아 있고, 어제는 별 자신 없이 이야기를 해서 약간 걱정했는데 경력이 괜히 경력이 아니군 껄껄껄…
나에 관한 인터뷰는 모두 끝이 났다. 다음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다. 다시 약간의 긴장감이 돈다. 승욱이… 우리 승욱이를 뭐라고 얘기하지? 그리고 어떻게 설명하지?
‘하나님 지금 이곳에 계시죠? 저희 손을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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