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 美 에 빠지다

2006-04-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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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美 에 빠지다

90년대 한국 탑 모델이었던 노충량씨가 즐겨 찾는 옷가게 스피가(Spiga)에서 꽃무늬 셔츠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그는 그린 코듀로이 팬츠에 회색 꽃무늬 셔츠, 짧은 넥타이로 귀여우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진천규 기자>

남자,    美 에 빠지다

한국 메트로 섹슈얼의 대명사 조인성. 한국 유명 남성복 브랜드의 전속모델인 그는 매 시즌 한국 남성 패션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해 왔다.

그들의 꿈꾸는 도발
아름다운 변신은
차라리 눈물겹다

여자보다 더 예쁜
메트로 섹슈얼 시대

그들이 꿈꾸는 도발이 자못 상큼하다. 어르신네들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아래 훑으며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차겠지만, 그들의 변신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핑크나 연노랑 같은 색깔 있는 셔츠만 수트 안에 받쳐입어도, 머리에 부분부분 염색만 해도 ‘날라리’ 같다는 핀잔을 감수해야 했던 남성들이 꽃무늬 셔츠에, 컬러 로션을 바르고, 보톡스에 얼굴을 맡긴다. 이제 ‘수컷들의 정글’에서도 우락부락한(그들 표현으로 터프한) 마초의 시대는 지나가고, 꽃미남의 시대마저도 이제 막 저물고, 바야흐로 여자보다 더 예쁜 메트로 섹슈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변신의 세계로 뛰어 들어 가보자.



예쁜 남자 기준 변천사

전쯤 생겨난 신조어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패션과 외모 등 여성적인 취향으로 자신을 가꾸는 남성을 일컫는 말이다. 탤런트 조인성과 가수 비 등이 대표주자. 지난해에는 메트로섹슈얼의 변종으로 남성성에 무게가 실린 위버섹슈얼(Ubersexual)이 나왔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김주혁이 위버섹슈얼의 대표적인 이미지. ‘거친 듯 부드러운 남성’이란 의미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 말이 나왔다. 크로스 섹슈얼(Crosssexual)이다. 의상이나 머리스타일, 액세서리 등을 하나의 패션 코드로 생각하고 치장을 즐기는 남성 스타일. 다만 행동과 말투는 남성스럽다는 게 특징이다. 이들은 규격화된 메트로섹슈얼이나 위버섹슈얼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해 색깔을 찾아간다. 결코 유행이나 한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 믹스테입섹슈얼(Mixtapesexual)이라고도 한단다.


사실 아무리 예쁜 남자 권하는 사회라고 해도 우리가 브래드 피트나 조인성처럼 입고, 화장하고, 운동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현실세계에서 만난 메트로 섹슈얼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노력은 여성들보다 더 눈물겹다 못해 진땀난다.
LA 한인타운의 평범한 직장인인 최모(29)씨는 특별한 모임이나 데이트라도 있는 날이면 수천 달러 상당의 의상과 장신구를 두르고 다닌다.
3,000달러 짜리 휴고 보스 양복에, 택 호이어 손목시계가 1,000달러, 페레가모 구두가 500달러, 여기에 불가리 안경과 루이뷔통 가방이 각각 1,000달러다.
그는 “이런 명품 ‘전투복’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특별한 날을 위해서라도 한 세트쯤은 갖춰놔야 되는 것이 요즘 추세”라며 “특히 여자친구들의 친구들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여자친구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패션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헤어스타일이나 점퍼, 시계, 속옷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자기외형을 완벽하게 치장하는 크로스 섹슈얼 바람을 탄 남자들. 이들의 의류선택은 당연하게도 까다롭기 그지없다. 소재도 여성복 못지 않게 다양할 뿐더러, 화려한 꽃무늬에다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도 거리낌없이 입는다.
핑크, 노랑, 연두 등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색상의 상의나 하의도 어울리기만 한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이뿐인가. 엉덩이를 위로 받쳐주는 남성용 거들(몸에 착 달라붙는 사각팬티)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바지에 드러나는 팬티라인을 숨기기 위한 T팬티도 많이 찾는다.
머리도 부드럽게 세팅하거나 숱을 쳐서 층을 많이 낸 스타일을 즐기고 눈썹 정리를 위한 제모 상품과 눈썹 연필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남성용 클린징이나 에센스, 팩 등 미백효과를 내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메트로 섹슈얼이니 꽃미남이니 하는 명사 이면엔 몸짱이 빠질 수 없다. 굳이 병적으로 마른 몸매를 가진 남성들만 입을 수 있게 디자인된 ‘디올 옴므’를 들먹이지 않아도 최근 남성복 유행경향도 여성 못지 않게 몸에 딱 달라붙는 슬림 룩이 유행하면서 남성들의 다이어트 열풍이 거세다.
그뿐인가 그 비쩍 마른 몸에 적당한 근육이 있어야 ‘옷발’이 사니 헬스클럽에서 근육 만들기는 패션에 좀 신경 쓴다는 이들 사이에선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 돼 버렸다.
회사 일로 밤늦게 귀가해도 반드시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근력운동을 한다는 회사원 김모(46)씨는 “요즘 40대 남성들은 아저씨로 불리길 거부한다”며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배가 나온다는 불안감으로 자정에 집에 귀가해도 피트니스 센터를 꼭 들른다”고 털어놓는다.
타운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강모씨. 그 역시 몸짱 대열에 들어서려 2년 전부터 운동으로 20파운드를 감량하고 주위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운동을 하다 보니 애써 키운 근육이 망가질까봐 술자리도 피할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게 된다”며 “친구들 중 남자가 무슨 몸매관리냐고 앞에선 비웃지만 대부분은 부러워하는 눈치”라고 귀띔한다.
◇얼짱의 결정판, 성형수술
여성과 달리 남성은 진한 쌍꺼풀 등 뚜렷한 변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표시가 최대한 나지 않기 바란다. 보톡스는 간단한 시술로 주름을 없앨 수 있다. 턱에 보톡스를 맞으면 근육의 움직임을 막아줘 얼굴이 갸름해지는 효과도 볼 수 있다. 필러 성형은 주사를 이용해 콧대와 코끝을 자연스럽게 높이는 방법. 시술 시간이 1∼2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칼을 대지 않는다. 보톡스와 마찬가지로 영구적이지 않다.
배원혁 성형외과 전문의는 “남성 성형 역시 여성들처럼 눈 쌍꺼풀과 콧대 세우는 게 가장 일반적”이라며 “예전엔 병원에 들어오는 것을 쑥스러워 하던 남성들이 요즘은 당당하게 들어올뿐더러 적극적으로 성형에 관심이 커진게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극히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엉덩이나 종아리에 보형물을 넣어 탄탄한 근육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술도 몸짱 시술로 각광받고 있다.
<글 이주현 기자 ·사진 진천규 기자>

<90년대 탑 모델 노충량씨가 제안하는 옷잘입는 노하우>
“많은 돈 들이지 않고 멋지게 꾸밀 줄 알아야 진짜 멋쟁이 아니겠습니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한국 모델계에 다크호스로 떠올라 단숨에 가장 몸값 비싼 모델로 이름을 날렸던 노충량(45)씨. 이런저런 곡절 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현재 그는 LA 한인타운에서 인기 있는 일본식 커리전문점 앙주(Anjue)사장이 됐다.
현직에서 물러 난지 이미 십 수년이 흘렀지만 그의 그 멋진 ‘옷발’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노충량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한때 잘 나가는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손 쳐도, 멋스럽게 기른 수염이며, 예사롭지 않은 스타일을 보면 다시 한번 눈길이 갈 만큼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멋지고 귀엽기까지 하다.
“많이 변했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자가 원색의 스웨터나 꽃무늬 몇 개 들어간 셔츠만 입어도 색안경을 끼고 봤는데 요즘 타운엔 다 모델이 아닐까 싶을 만큼 헤어스타일이며 패션감각이 뛰어 납니다. 덕분에 예전에는 조금만 튀게 입어도 눈에 띄었지만 요즘 같아선 옷 잘입는다는 소리가 듣기 힘들죠(웃음)”
이렇게 엄살 아닌 엄살을 떨지만 그는 청바지에 정장 감색 재킷을 멋지게 코디 할 줄 알고, 자칫 무거워 보이는 넥타이를 두 번씩 돌려 매는 수고도 마다 않는, 패션에 있어서 연출이라는 게 가능한 몇 안 되는 한국 남자다.
이처럼 왕년에 패션이라면 ‘한가닥’했던 그가 제안하는 옷 잘 입는 노하우 첫째는 다른 건 몰라도 바지 하나만큼은 힙이 잘 피트 되는 좋은 걸 입는 것이다.
“옷 잘 입는다는 사람도 팬츠 피팅에 신경을 잘 안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복의 생명은 바로 바지 피팅에 있습니다. 바지 하나만 좋은 것으로 몸에 잘 맞으면 위엔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멋스럽습니다.”
둘째, 구두 색상을 옷 컬러 중 하나에 맞추는 것이다. 하다못해 넥타이 도트 무늬에라도 있는 색상을 구두 색깔과 맞춰주면 센스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세째는 싼값에 샤핑하는 재미를 즐기라고 그는 강조한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의 단골 옷가게는 디스카운트 스토어인 로스(Ross)였다. 그곳에서 운이 좋은 날이면 일반 컬렉션에서도 구하기 힘든 옷들이 종종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의 패션 감각만큼이나 돋보이는 것은 바로 그의 피부. 한창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깨끗하고 건강한 피부는 그렇지 않아도 스타일리시한 그의 패션 감각을 더 세련돼 보이게 한다.
“피부관리요? 음주, 흡연 절대 안하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요. 웰빙이 따로 있나요. 건강한 먹거리를 실천하면 고운 피부는 절로 따라 옵니다”
그의 깨끗한 피부 관리의 지론이다. 때로 아름다움은 이렇게 간단한 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순간이었다.

<이주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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