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변혁

2006-04-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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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반부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Black Death)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재앙이었다. 1347년부터 불과 5년 사이에 유럽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500만명이 흑사병에 걸려 사망했다. 흑사병으로 인해 사회 구조는 물론 신앙의 체계도 일대 변혁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 시기에 제도적인 가톨릭에 대한 반발로 신비주의적인 신앙과 민중경건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 부류는 인류의 종말처럼 다가온 재앙 앞에서 경건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자 했고, 다른 부류는 신앙심도 어찌할 수 없는 대재앙의 처절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쾌락주의로 빠져들어 갔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 15:32)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인근 한적한 산골 별장으로 피난한 10명의 남-여 젊은이들이 10일 동안 먹고,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기록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오늘날 용어로 표현하면 일종의 포르노 소설이었다. 음란한 수도사가 수도원에 들어온 10대 소녀와 동침하기 위해 벌이는 온갖 추잡한 행동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향락생활에 깊이 빠져든 젊은 남녀의 성적 도착증, 상류사회의 간통사건 등을 상세히도 기록했다. 물론 데카메론에는 숭고한 사랑의 기쁨, 신앙에의 귀의와 같은 다른 소재들도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오늘날까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은 중세시대에 기록된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표현들이다. 데카메론은 출판과 동시에 일반 민중들 사이에 또 다른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종이 인쇄기술이 발명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데카메론은 거리의 변사들을 통해, 그리고 구전 설화형식으로 사람들 사이에 크게 회자되었던 것이다.
흑사병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을 매일 드나들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경건한 신앙 생활만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민중 경건 운동을 일으켰다. 과거 수도원 운동이 일부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한 형식주의적인 경건 운동이었다면 흑사병으로 인해 일어난 경건 운동은 일반 민중들 사이에 형식에 구애됨 없이 자신의 삶을 경건하게 드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이 당시 경건 운동을 이끌었던 가장 귀한 교본으로 오늘날까지도 크리스천들의 필독서 가운데 한 권으로 꼽히고 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존 위클립은 종교적 위선과 형식으로 가득 찬 가톨릭 교회를 향해 변혁를 외친 종교 개혁의 선구자였다. 그는 교회가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힘써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성경은 오직 성직자들만이 읽을 수 있었고, 예배는 거룩한 언어, 라틴어로만 진행되어서 일반 성도들은 예배에 참석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단지 거룩함만을 강조하는 교회의 분위기에 주눅들어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14세기는 눌렸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고, 타락한 가톨릭 교회를 향해 종교 개혁의 여명이 밝아오는 시기였다.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
(예찬출판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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