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4-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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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이 뭐길래

승욱이가 새벽에 집을 나갔을 때 승욱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약 경찰에게 붙잡혀 갔으면 영주권 인터뷰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뻔했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겉으로 대수롭지 않게 엄마의 말을 들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정말 4년을 넘게 기다린 영주권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뻔했던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영주권 인터뷰를 위해 신체검사와 여권을 만들려고 이리저리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승욱이, 승혁이 따로따로 시간을 내서 병원 가서 신체검사를 하고, 여권을 만들려고 서둘러 여권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가고…
그런데 문제는 승욱이의 사진 찍는 일이었다. 앞을 똑바로 보고 초점을 맞출 수가 없는 승욱인 사진사 아저씨의 애타는 외침에도 쳐다보질 못한다.(소리가 정확히 어디에서 나는지 모르기에)
급기야 내가 뒤에서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겨우 사진을 찍었지만 너무 고개가 숙여 있는 바람에 사진관 아저씨도 나도 갸우뚱이다. 벌써 여러 차례 사진을 재차 찍어서 더 이상 미안해 한번 더 찍어 달라는 말도 못하고 고개 숙여 찍은 사진을 들고 집으로 왔다.
LA 영사관으로 아이들 여권과 내 여권을 만들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조심스럽게 여권용 사진과 서류를 내밀었다. 영사관 여직원도 갸우뚱이다. “어! 이 사진… 너무 고개를 숙이고 찍어서 여권을 만들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난 승욱이가 전혀 앞을 못 봐서 제대로 사진을 찍어 올 수 없었다고 사정을 말했다. 그나마 제일 잘 나온 사진을 가지고 온 거니까 될 수 있으면 만들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영사관 여직원은 제일 높은 분에게 가서 일단 물어봐야겠다고 승욱이 여권사진을 들고 가서 소식이 없다.
‘우씨… 오늘 이 사진이 안 된다면 또 어떻게 다시 사진을 찍어오란 말이야. 이 일을 어쩌나…’ 여직원은 한참 후에야 돌아오더니 여권을 만들어는 주는데 나중에 승욱이가 외국으로 출국할 때 공항에서 본인 사진 대조시 문제를 삼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난 문제고 뭐고 여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더 귀가 솔깃하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준비해 오라는 서류가 다 준비되었다. 마지막으로 영주권 인터뷰 가기 전날 난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변호사는 유대인으로 20년 넘게 취업이민 전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일 있을 인터뷰에 앞서 예행연습(?)을 위해 사무실에서 만난 것이다.
서류를 함께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세금보고도 잘했고, 범법 사실도 없고, 자동차 티켓하나 없는 것까지 그동안 미국생활을 잘해 왔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승욱이라고 했다. 승욱이…. 승욱이가 와우이식할 때 정부보조 받은 것이 변호사가 제일 걸린다고 했다. 내일 함께 인터뷰에 들어가서 만약 그것을 문제삼아 영주권을 받지 못하게 되면 끝까지 함께 싸워 주겠다고는 했지만 변호사도 약간 자신이 없는 것은 나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도대체 영주권 받는 것까지 왜 이리 이것저것에 승욱이가 걸리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일 영주권을 승욱이 때문에 받지 못하면 어쩌지?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약 내일 영주권을 받지 못하면 아픈 아버지를 두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지 어쩔지가 걱정이다.
늦은 저녁,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여러 가지 생각의 실타래 여러 개가 엉켜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용량초과 상태이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천국의 시민권자가 미국 영주권이 뭐가 대수이냐고 물었다. 미국에 데려다 놓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살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승욱이 엄마로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이신 것을… 어디에 나를 놔두시든지 하나님 뜻대로 하시라고 턱 맡겼다.
아… 이젠 두 다리 쭉 피고 자야지. 내일을 위해 아자!! 아자!! 아자!!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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