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독교 역사로 보는 오늘의 교회 ⑬ 12세기, 십자군전쟁

2006-04-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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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의 주요 사건일지
▶ 1122 서임권 투쟁 종결
▶ 1147 제2차 십자군 원정
▶ 1187 이슬람, 예루살렘 재탈환
▶ 1189 제3차 십자군 원정
▶ 1200 제4차 십자군 원정
* 고딕양식 교회건물 건축 시작
* 신비주의 신앙운동, 독일 여성
힐데가드(1098~1179)의 활약
* 교황 권력의 최고 전성기


이 세상에 거룩한 전쟁이란 없다. 전쟁은 그 명분이 무엇이건 잔인한 살육과 피비린내 나는 보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온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순스럽게도 지난 1,000여년 동안 ‘증오와 전쟁’의 깊은 상처를 역사 가운데 남겨왔다. 오늘날 중동 사태, 발칸반도 분쟁, 그리고 9.11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등 현재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 무력 충돌의 시발점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갈등이 해묵은 괴물처럼 늘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시작은 12세기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십자군 전쟁은 예루살렘 성지 탈환이라는 거룩한 명분을 가지고 시작된 종교전쟁이었지만 사실상 동-서 교회를 통합하려는 로마 교황의 정치적인 야망, 중세 유럽사회를 지탱해 왔던 봉건제도의 위기, 그리고 622년 마호메드에 의해 창시된 이후 대 정복 운동을 통해 계속적인 영토확장을 해온 이슬람 세력과의 운명적인 충돌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내재하고 있었다.
7세기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은 당초 기독교인들에게 통행세만 받고 성지순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왔으나 11세기 들어서며 통행세를 과도하게 부과하고 순례자들에 대한 핍박을 강화했다. 그러자 한편으로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이슬람 제국을 상대로 십자군 전쟁을 선포했다.
“이교도에 의해 성지순례의 길이 차단되고 있으며 기독교 국가의 영토가 계속 위협당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전쟁을 시작할 때이다. 이 성전에 참여했다가 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이미 보장받았다. 마귀를 숭배하는 이교도들은 반드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에 의해 파멸될 것이다”
우르반 2세 교황이 제시한 천국행 보장, 모든 죄가 자동적으로 사해진다는 면죄부 카드는 당시 중세 유럽 봉건제도에 눌려 있던 중하층 농민들을 크게 자극했고, 순식간에 5만 여명의 병사가 모집돼 예루살렘을 향해 1차 진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십자군은 경험있는 지휘관도, 훈련된 병사도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방법도 없이 장거리 이동을 시작한 십자군은 결국 지나가는 곳마다 반강제적인 약탈을 통해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했으며, 예루살렘을 함락한 이후에도 야만적으로 무슬렘과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해 ‘거룩한 전쟁’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던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후 200년동안 8차에 걸쳐 계속되는데, 이슬람 제국이 자중지난 가운데 빠져있었던 제1차 원정 때만 예루살렘을 함락하는데 운 좋게 성공했고, 나머지 전쟁에서는 이슬람이 다시 전력을 재정비해 십자군을 계속 물리치고 1187년 예루살렘은 다시 이슬람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내려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평가는 종교가 진리 추구하기를 중단하고 세상 권력과 부를 추구하기 시작할 때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백 승 환 목사
(예찬출판기획 대표)
baekstephe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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