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이 담긴 꽃밭

2006-03-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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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 바쁘다 보면 자신의 집 마당 한켠에 무슨 꽃들이 피어있는지도 모르고 지날 때가 많다. 아니 아내나 가족들이 말해 주지 않는다면 1년 내내 모르고 지나 갈 것도 분명하다.
지난 주말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한 젊은 커플에게 집 몇 채를 보여주는 중에 집안을 정성들여 예쁘게 꾸며놓고, 뒷마당 또한 예쁜 화초들로 잘 가꾸어진 집 한 채를 보여주게 되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뒷마당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을 수 있었는지 감탄하여 그 젊은 커플은 곧바로 오퍼를 넣었고 즉시 매매성사가 이루어져 상쾌한 주말의 오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고객 한분으로 부터 집들이 초대를 받았었는데 40초반인 그 부부는 얼마 전에 아담하게 뒷마당이 있는 깨끗한 단층집을 장만한 후에 집안 구석구석을 새로 단장하고 예쁘게 페인트도 하고 예쁜 액자들도 걸어놓아 마치 모델 홈처럼 꾸며놓는 등 행복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제대로 꾸며놓고 있었다.
“참 예쁘네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 조그맣지만 이렇게 내 집이 있다는 게“ “네, 참 젊은 마음을 같고 계시네요.” “그럼요, 마음은 아직도 한창인 걸요.” 저녁을 먹고 난 후 커피잔을 들고 잠시 뒷마당에 나가 보는 순간, 젊은 커플의 주택구입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전 내내 설엇던 내 마음은 결국 콩닥콩닥 가슴이 뛰는 총각시절의 필름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처음 구입시에는 콘크리트로 덮여있어 휑하던 뒷마당의 한 구석 모서리에 양 손바닥을 펼쳐 놓은 크기의 작은 꽃밭이 만들어진 것을 보는 순간, 이름 모를 분홍색 빨간색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것이 마치 캘리포니아의 봄을 보는 듯하여 칼스베드의 꽃단지를 생각나게 하였고, 불과(?) 20여년전에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신혼 여행지 제주도의 화채 꽃 들판들이 연상되었다.
언젠가 김숙자 사모님께서 선물로 주셨던 안병욱교수의 수필집에서 읽었던 구절도 생각났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풀과 꽃이 없는 화원 같다’, 바꾸어 말하면 ‘풀과 꽃이 있는 이부부의 가정엔 사랑이 있는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싶었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껑충 넘어선 내 자신에게 있어 가끔은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해버린 꿈같은 20대 젊은 시절의 낭만들이 이렇게 문뜩 문뜩 찾아들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무척 아쉬워지기도 한다.
10여년 간을 나의 옆집에서 좋은 이웃으로 살다가 지금은 멀리 이사간 60대 중반의 백인 할아버지 할머님도 늘 바쁘게 일하시면서 화단을 가꾸고 풀을 깎고 잡초를 뽑아내고 화단에 예쁜 조각들도 사다놓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 해주셨던 분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주위에 욕 안 먹을 정도로만 풀도 깎고 나무를 다듬어 주는 등 바쁘다는 핑계로 줄곧 가드너의 손을 빌려서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이런 나를 생각하면 젊은 시절에 을지로의 흥사단 건물인 대성빌딩에 나가 사랑과 자아실현에 많은 말씀을 들려주셨던 안병욱 교수님의 금요 철학 강좌가 생각난다. 그때의 말씀대로라면 우리 집에는 사랑이 있는 인생을 가꾸는데 있어서 내 스스로가 아닌 남의 손을 빌려 가꾸고 있다는 자성의 결론이 나온다.


케니 김

(909)641-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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