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바쁘면 죽습니다’

2006-02-24 (금)
크게 작게
바쁜 것이 정상처럼 되어있습니다. 안 바빠도 바쁘다고 해야 보통사람 취급을 받고 사는 세상에 우리도 끼어 있습니다. 누가 시작한 삶의 틀인지는 몰라도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점점 더 바빠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 몸으로 두세 곳에 동시에 있고 싶은 심정으로 우리가 삽니다. 아무리 바쁠 때가 좋다고는 하지만 웬만큼 바빠야지요. 하루가 스물 네 시간인 것이 아쉬울 때도 있고 일주일이 7일 밖에 안 된다는 현실에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들의 삶은 한 곳에서 하나의 명제를 두고 살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운동하면서 텔레비전을 보아야 하고 공부하면서 음악을 들어야 하고 식사하면서도 무언가 읽어야 하고, 사실은 기도하면서도 삶의 복잡한 문제들을 동시에 걱정하는 버릇은 흔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가 잘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는 ‘거기에 온전히 있는 것’(the Full Presence)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그곳에 지금 있으면서도 거기에 없는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말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여 듣는 일에 서투르고, 말을 하면서도 말을 듣는 이들과 ‘온전히 함께 하는 말’이 드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거죠. 챙기고, 쌓고, 경쟁하고, 바라며 분주하게 사는 우리는 우리가 있는 그곳에 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력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사순절이라는 계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주일을 제외한 부활주일 전날까지 40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모든 신앙인이 쳇바퀴 같은 분주한 삶에서 자신을 풀어놓아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과 삶, 그리고 삶의 목적과 소명을 두고 기도하고 명상하는 계절입니다. 영적으로 숨고르기를 하는 40일을 말합니다.
어느 종교의 형태이든 경건의 모습 속에 끊임없이 참된 자신을 찾는 숭고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숭고함에는 바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호흡에 삶의 속도를 재조정하는 거룩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생각해 보면, 한 순서 한 순서마다 우리가 마음 모두를 온전히 그 곳에 두어야 하는 거룩한 순간들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 듣고 바치며 다짐하고 변화되고 결심하는 모든 과정은 하나라도 바삐 스쳐가며 몸은 거기에 두고 마음은 또 다른 곳을 헤매는 일이 없어야 하는 귀한 시간입니다.
비둘기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새라고 합니다. 그 걷는 모습이 이상하다는 말이죠. 비둘기는 한 참 바쁘게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 확인하고 또 앞으로 가는 버릇 말입니다. 방향을 정하고 발이 보이지 않게 바삐 걷다가 일정한 거리를 지나면 반드시 멈춰서는 지혜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흔히 바빠 죽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바쁘면 죽습니다. 수억 년을 두고, 한 시간에 약 1,000마일을 달려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드는 지구의 자전도 조용히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과 허망한 꿈에 쫓겨 매일 펼쳐지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축제를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곧 죽음입니다. 바빠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노을과 별, 나뭇잎 끝의 바람과 사랑과 깊은 삶은 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먹고 살만하면 생각해보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입니다. 바쁘세요? 숨고르기를 하시죠. 우리 영혼의 숨고르기 말입니다. 바쁘게 살면 ‘더’ 사는 것 같아도 ‘덜’ 사는 것입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믿는 자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곽 철 환 목사
(윌셔연합감리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