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독교 역사로 보는 오늘의 교회 ⑥

2006-0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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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신국과 제국 사이에서

■5세기의 주요 사건일지

▶ 410 고트족 로마 침입
▶ 426 성 어거스틴 ‘신국론’ 완성
▶ 431 에베소 공회
▶ 432 성 페트릭 아일랜드 선교
▶ 451 칼케돈 공회
▶ 455 반달족 로마 침입
▶ 457 교황이 황제 제관식 주관
▶ 476 서 로마제국 멸망
▶ 484 동·서 교회 분열


정말 하나님은 있는 거야?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반달족의 침입으로 인해 불타는 로마를 뒤로하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50만명의 로마 시민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 기독교로 개종했던 많은 로마인들은 고트족, 반달족, 훈족등 야만 민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가 계속 약탈당하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단계를 넘어 기독교가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는 바람에 이 같은 재앙이 닥치게 된 것이라고 기독교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5세기 무렵 대도시의 주교들은 하나님이 로마제국을 축복하시고 또한 침입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초신자였던 대다수 로마인들이 현실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신학적 답변이 필요했지만 대다수의 주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쾌한 신학적 답변을 제시해 준 신학자가 바로 성 어거스틴이었다. 그는 12년간의 저술을 통해 완성한 ‘하나님의 도성 (City of God)’을 통해 기독교 역사관에 입각한 신국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재앙으로 인해 실의에 빠져있던 로마인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어거스틴은 “모든 지상 제국은 영원 존속할 수 없으며 끝은 언젠가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인간의 역사는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결국 죄악과 구원의 싸움이며 이 땅의 세력과 하늘 왕국의 전쟁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민권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세기 교회는 권력의 날개를 달고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부패했다. 성직자들은 권력과 물질적인 부를 누리며 화려한 의복, 금과 귀금속으로 장식했고, 거의 매일 연회를 즐겼다. 세금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직을 돈주고 사겠다고 나섰고, 교회에 재정이 늘어나면서 저마다 한껏 위용을 자랑하기 위한 대규모 건물 건축을 시작했다. 예수에 대한 신성, 인성 논란(펠리기우스, 네스토리우스 논쟁)과 더불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견해 차이, 그리고 성직자의 결혼문제로 인해 결국 교회도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로 분리되었다.
5세기 중엽부터 로마 교황이 황제의 제관식에서 왕관을 씌워 주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교회는 상징적으로 제국의 상위 기관이 되었다. AD 476년 서로마제국은 반달족의 오도아케르 장군에 의해 마지막 황제 아우그스투스가 강제 폐위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비록 동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잔존하고는 있었지만 1천년 동안 번영을 구가했던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제국도 끝을 보게 된 것이었다. 한편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오히려 교황의 권력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 교황은 제국이 무너지면서 정부의 견제 없이 모든 일을 단독으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무한한 권한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도권 교회가 권력과 부를 즐기며 부패하고 있는 동안 그나마 기독교의 참된 영성은 개인 경건과 철저한 금욕생활을 강조하던 수도원을 통해 근근히 전달되고 있었다.


백 승 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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