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반갑고 처음 뵙는 손님맞이’

2006-0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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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가장 분주한 날이 있다면 귀하신 어른이 찾아오셔서 며칠 묵고 가시기 바로 전날일 겁니다. 저희는 손위의 분들이 많아서 좁은 아파트에 모시려면 우리 침실을 내드려야 하기 때문에 침대 시트부터 화장실까지 온 집안 대청소 날로 무지무지하게 바빠집니다. 하지만 손님이 가신 후에 깨끗해진 집안을 보노라면 속도 깨끗해진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새벽녘, 예배당에 도착해서 길 건너에 주차하고 뉴햄프셔 길을 막 건너려는데 동네 길이 좀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무심코 지나쳐 본당에 들어왔습니다. 늘 예배 두어 시간 전에 도착하는지라 아무도 없는 회중석 의자를 하나 하나 만지면서 항상 하듯이 ‘오늘도 보내주실 새 가족들이 이 자리에서 은혜받게 해주세요’ 기도하다가 문득 집에서 손님맞을 준비로 분주했던 생각이 떠오르자 무언가 머리를 ‘쿵’ 하고 내리쳤습니다.
‘기도는 새 가족을 보내달라고 하면서 그 반갑고 귀한, 처음 뵙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했구나!’
얼른 밖으로 나가서 길에 널려있는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별 오물이 다 있는 겁니다.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에 깨진 술병, 비도 오지 않았는데 흥건히 고여 있는 탁하고 누런 빛깔의 액체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습니다. 몇 발자국 더 가니까 세상에 이럴 수가! 길바닥에서 어떻게 이다지도 큰 것을 볼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외에 양말, 얼굴 뜨거운 속옷, 그보다 더 한 물건까지 온갖 것이 다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새 가족들이 스트릿 파킹 하다가, 혹은 길을 건너다가 이런 오물을 물컹 밟기라도 한다면… 만약에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면 재수 옴 붙은 날, 그 기분이 어떨까 생각하니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치웠습니다.
거의 한 시간이 흐르자 찬양대원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보면 미안해 할까봐 길모퉁이를 돌아 피코 길로 갔더니 그곳은 큰길인데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담배꽁초, 종이조각 하나까지 다 치우고 나니 깨끗해진 길바닥만큼이나 제 마음 바닥도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해진 기분으로 그날 예배드리는데 어김없이 새 가족들이 오셨고 처음 뵙는 그 분들을 맞이하는 하얀 마음에 꼭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처럼 기뻤습니다.
동물제사를 지내던 옛날에는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이 밥 먹고 하는 주된 일 가운데 하나가 제물의 기름과 피로 범벅이 된 성전을 청결케 하는 일이었다는데 그런 자부심으로 그 다음 주일부터는 더 일찍 나와서 길도 쓸고 마음도 치우기를 9개월쯤 했는데 어느 날 저희 예배당을 같이 사용하는 히스패닉 교우들이 주일 새벽기도를 한다고 해서 허락해드렸더니 처음에는 한 분이 오셔서 저를 도와주셨고 그 다음 주는 서너 분, 지금은 30여 분이 기도하러 오셔서 예배당 주변을 순식간에 치워주십니다. 요새는 낯뜨거운 오물과 쓰레기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시무장로님들은 주일 예배당에 오실 때 거의 다 작업복을 차에 넣고 다니십니다. 작년 말에 새로 선출되신 세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업복에는 거멓게 때가 묻을지라도 손님맞이하는 교회와 마음의 때는 하얗게 벗겨지던걸요.


홍 성 학 목사
(새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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