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2006-02-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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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함이 사라진 교회

여행을 하다보면 공항버스 탑승 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리무진들이 있다. 각급 호텔에서 손님들을 모시기 위해 운행하는 리무진들이다. 정면에 호텔 이름과 함께 Courtesy Bus 라고 명시된 것을 볼 수 있다. 쉽게 이해하자면 손님들을 정중하게 모시겠다는 말이다. 시간이 좇길 때는 쏜살같이 운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기사들은 상당히 정중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다룬다. 하룻밤 머물다 가는 손님들을 대하는데도 정중함(courtesy)을 잃지 않는 저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때로는 무례하게 구는 손님에게도 부드럽게 안내하는 모습이 있으며,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함을 잃지 않는 저들의 참을성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문화는 정중함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이는 의무적인 예의범절로 자리 잡아왔다. 계층의 엄격한 규율을 생명처럼 여기는 문화 속에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항상 예의와 정중함을 보여야하며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무례하게 다루어도 별로 흠이 되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온 세대들은 특별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게 된다.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보통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희한한 현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주일이 되어 교회에서 세상일에서는 자기보다 아랫사람이지만 그들을 섬기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그 지역 대학 총장님이 주일날 교인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일도 도맡았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학생들은 일부러 그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던가!
물론 교회사의 초기에는 이런 모습들이 교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빈부와 직업의 계층에 따라 구별된 풍습과 구별된 언어를 주장했던 우리 한국사회는 그러한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서로를 신임할 수 있고 서로의 다른 점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 교회의 본래 모습인데도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이러한 정중함이 사라져 간다. 교회 안에서 주어진 여러 직분의 기능적인 특수성이 사라지고 하는 일에 따라 계급적인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정중함이 사라져가고 있다. 특별히 주일마다 설교하는 목사들이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피해가고 있다. 사람들을 섬기면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자신들이 대단한 권세나 가진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기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성경말씀을 잘못 이용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서로를 존경하고 칭찬해 주는 분위기는 지도자들이 만들어야 한다. 마구잡이로 성도들을 꾸짖고 책망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교회는 정중함 대신 무례한 행동이 자연스러운 곳으로 여기게 된다. 서로의 대화 가운데 존대의 말보다는 반말과 무례함이 지나치다. 때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난무한 직장에서 서로에게 내뱉는 투쟁적인 언어들이 교회 안에서 번식되고 있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끼며 사랑해 주는 마음들이 우리 모두에게 훈훈하게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중함이 유지되는 사회와 단체는 삶에 대한 신선함을 끊임없이 뿜어내는 짙푸른 농장과 같다.


손 경 호 목사
(보스톤 성령교회)
(LA 기윤실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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