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독교 역사로 보는 오늘의 교회 ⑤

2006-02-10 (금)
크게 작게
4세기. 하나님을 떠나 황제 품으로…

신앙이 제도화되면 생명력을 잃는다.
4세기 들어 기독교는 핍박의 대상에서 갑자기 보호와 장려의 대상으로 그 위치가 180도 전환된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지하공동묘지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고, 감옥에 갇혔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풀려났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기도했던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쟁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얻게 되었지만 황제의 보호와 간섭을 받게되면서 기독교는 끈질긴 생명력과 강한 야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슬하를 떠나 황제의 안락한 품속으로 숨어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강건하게 믿음을 지켜나가던 성직자들도 갑자기 주어진 자유, 권력, 그리고 물질적인 부요함 가운데 서서히 썩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황제의 회심은 간혹 사도 바울의 회심에 견줄 만큼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지만 두 회심 사이에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다. 황제가 되기 위해 아내와 자식까지 처형했던 야심의 콘스탄틴은 312년 마지막 정적이었던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태양 가운데 십자가의 환상을 보고, 또 꿈속에서 전쟁에 이길 것이라는 환청을 들은 후 대승을 거둬 드디어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콘스탄틴은 그 후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에 대한 보호, 육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다.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325년 콘스탄틴 황제 주관 하에 니케아 제1차 공회가 열려 삼위일체론을 정통설로 확정했다. 그러나 콘스탄틴의 회심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다. 개종 이후에도 그는 태양신을 그대로 섬겼으며,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세례도 죽은 후에 받았다. 때문에 그의 회심은 진정한 회심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있는 위장된 회심이었다는 평가를 받게된다. 어찌되었던 그로 인해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등에 업혀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하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은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아리우스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삼위일체설을 부인하면서 예수는 하나님의 첫 번째 피조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니케아 공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돼 강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 이단을 통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또한 성찬식에 대해서는 포도주와 떡이 성찬식이 진행되는 동안 진짜 예수의 피와 살로 변화된다는 화채설(Transubstantiation) 교리가 정설로 받아들여져 반드시 성직자에 의해서만 성찬식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남은 떡과 포도주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성직자가 다 깨끗하게 처리한 후 그릇을 씻도록 했다. 그런데 화채설을 반대하던 신학자들 가운데서 남은 떡 조각을 쥐가 먹었을 경우 그럼 쥐도 구원을 받게되느냐고 반론을 제기하자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신학자들이 오랜 기간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교회가 제도화되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갑바도기아 지역을 중심으로 세상의 권력을 가까이 하지 않는 수도원 운동을 펼쳐나갔다.


■4세기의 주요 사건일지


▶AD303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기독
교 박해
▶AD313 밀라노 칙령
콘스탄틴 황제 기독교 합법화
▶AD321 주7일 제도, 일요일 휴일로
정함
▶AD325 니케아 제1차 공회
▶AD330 콘스탄티노플 건설
▶AD367 신약 27권 캐논 확정
▶AD381 콘스탄티노플 제2차 공회
▶AD392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


백 승 환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