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봄맞이 대운동기간’

2006-02-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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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나는 턱걸이 점수를 받았다. 닥터 박은 나를 안심시키려고 명랑한 목소리로 검사 결과를 말했지만 건강이 많이 나빠져 있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놀라는 마음보다는 받아들이는 심정이 되었다. 몸은 자꾸만 못 견디겠다 하는데 그 하소연을 못들은 척 하면서 나는 앞으로만 냅다 달려왔었다.
‘더 미루지 말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할 때가 되었네!’ 나는 나에게 말했다. 오래전 등산을 시작한 고교 동창들에게 연락을 했다. “나도 좀 걸을라고 하는데, 다음 산행은 언제야?” 장난꾸러기 친구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범수가 살 빼려고? 잘 생각했다. 내가 책임지고 빼주마, 1온스 당 1달러씩만 받을게. 싫어? 그러면 1그램당 1달러, 어때?” “무엇이라고? 20파운드면 만 불?”
바로 그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나는 가까운 그리피스 파크 하이킹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산줄기도 훨훨 올라다닐 정도가 되었지만 나의 시작을 축하하며 격려하는 뜻으로 하이킹 길을 안내했다. 새벽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아스팔트길에 익숙하던 발바닥이, 부드러운 흙을 밟더니 즐겁다 한다. 오피스 안에서 기계로 정화된 공기를 호흡하던 내 기관지들이, 오존 가득한 자연산소를 마시더니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날부터 나는 흰쌀밥을 끊었는데 거칠고 누런 현미쌀과 콩들이 입 속에 들어오더니 아무리 씹어도 목에 잘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동안 2시간 공들여 준비한 식사를 5분만에 먹어치운다고 서운해하던 아내를 기쁘게 해주니 여러모로 잘 된 일이다. 반찬은 고기류에서 완전히 그린 필드로 바뀌었다. 먼저 야채 한 접시를 비운 뒤에 밥을 먹기로 정하였는데 샐러드 접시 위에 산처럼 쌓인 풀더미를 씹으며 ‘내가 소인가?’ 불평하지만 먹고 난 뒤에는 불쾌한 포만감 대신 활력을 느끼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테니스도 치고 아침마다 개를 벗하여 산책도 한다. 스트레치도 하고 수영도 한다. “범수야, 아는 사람이 재즈 댄스로 40파운드를 뺐단다.” 한 친구가 내 등을 민다. 오래 전에 에어로빅 클래스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 고역을 치르고 나왔던 경험을 떠올리며 내가 고개를 흔든다.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아냐? 즐거운 댄스뮤직을 들으며 흔들다보면 엔돌핀이 절로 나오지. 땀이 비오 듯 하는데 그처럼 기분 좋은 운동이 없다 이거야.” 팔 동작 따라하다 보면 스텝이 엉키고 다리 동작 따라하다 보면 팔이 다리하고 함께 나가곤 하던 그 우스꽝스런 운동을 나더러 해보라고? 나의 반문에 친구는 덧붙인다. “얌마, 아무도 너 안쳐다본다니까. 자기꺼 따라가기도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너 쳐다볼 틈이나 있겠냐?” 오케이, 오케이! 다음 주부터는 운동 스케줄에 재즈 댄스까지 추가하기로 한다.
“선생님, 체중이 너무 줄어서 환자들이 선생님 못 알아보면 어떡해요?” 함께 일하는 간호사들이 나를 놀리지만 아내가 비밀리에 공작을 해둔 탓인지 환자들이 가져다주는 케익이 내 책상 앞에까지 오는 일도 이젠 없다.
건강 지키기에 집중하면서 교회 일을 줄이다 보니 ‘이것도 하나님의 일과 상관이 있을까?’ 자문하게 되었는데 오늘 파푸아뉴기니 선교사님으로부터 그 해답을 얻었다.
“집사님, 이번 3월에 선교오실 때까지 체중을 좀 줄이시면 좋겠습니다. 현지 경비행기 요금을 체중에 따라 매기거든요.”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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