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독교 역사로 보는 오늘의 교회 ②

2006-01-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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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예수의 탄생과 초대교회

■1세기의 주요 사건일지
▶ AD 3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
▶ AD 36: 사도 바울의 회심
▶ AD 49: 예루살렘 공회
▶ AD 64: 로마 대화재,
네로 황제 기독교 박해
▶ AD 70: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인류의 역사가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emini, the Year of Lord)로 나뉘게된 것은 인류 전체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세기는 시기적으로 볼 때 예수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그의 교훈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 아직 생존하고 있던 때였다. 그들은 메시아라고 믿었던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것을 목격하고 실망 가운데 뿔뿔이 흩어졌었지만 얼마 후 부활한 예수를 다시 만나는 경험을 통해 예수가 인류의 진정한 메시아,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그를 증거하던 제자들이 한결같이 가장 처참하게 순교했다는 사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왜냐하면 거짓 조작된 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세워지기 시작한 1세기 초대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다.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 그를 따르던 크리스천들은 심한 박해를 받았다. 초창기에는 주로 동족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였으나, 나중에는 로마 정부로부터도 극심한 박해를 받게된다. 특히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의 원인을 크리스천들에게 뒤집어씌우며 시작된 박해는 순식간에 2만여명의 크리스천들을 맹수의 밥으로 만들었고, 높은 장대에 크리스천들을 매달아 불태우며 로마 궁정을 밝히는 횃불로 사용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기독교를 향한 박해가 이처럼 심해질수록 오히려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들의 수가 날로 늘어갔다는 점이다.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가 주관했던 예루살렘 공회(AD 49)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리를 공식적으로 채택함으로 인해 기독교가 유대인 종교의 한 분파로 제한되지 않고 세계인의 신앙이 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또한 1세기는 사도 바울을 위시한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신약 성경이 완성되던 시기였다. 이방인의 사도로 불렸던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8,000여마일(시카고에서 서울까지의 직선 비행거리)을 여행하며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고, 그가 당시 각 교회에 보냈던 서신들이 현재 신약 성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AD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초대교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대 지역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형성해 가고 있었는데, 로마 군사들에 의해 성전의 돌이 하나도 제자리에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면서 예루살렘의 크리스천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지중해 연안 곳곳으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형성하게 된다.
1세기는 사람들이 힘과 권력을 원할 때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희생과 겸손의 논리로 온 인류를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다는 놀라운 비전을 제시한 시기였으며, 그 비전은 지난 2천년동안 인류의 역사를 통해 그대로 입증돼오고 있다.


백 승 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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